[광화문에서/박성원]‘10월의 서프라이즈’와 불량 경선

  • 입력 2007년 10월 9일 03시 04분


1980년 11월 미국 대선을 앞두고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후보 진영은 지미 카터 대통령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이란 정부와의 비밀협상을 통해 테헤란에 억류돼 있는 미대사관 직원 등 인질 52명이 선거일 직전에 풀려나도록 ‘깜짝쇼’를 할지 모른다는 염려 때문이었다. 집권세력이 외교·군사 정책적 수단을 동원해 ‘10월의 이변(October Surprise)’을 도모할 가능성을 경계한 것.

레이건 진영은 대통령과 정부가 이란 인질정책을 선거에 이용하지 못하도록 면밀히 감시하는 모니터링 체제를 유지했다. 인질 사태에 개입할 병력과 물자의 이동을 막기 위해 워싱턴 근교의 앤드루스 공군기지를 비롯한 4개 군사기지에 퇴역 군인과 선거캠프 요원을 파견해 감시했다. 이란 정부가 선거일까지도 인질을 석방하지 않음으로써 ‘10월의 이변’은 물거품이 됐고 레이건 진영은 가슴을 쓸어내렸다.

노무현 대통령이 남북 정상회담을 위해 방북하자 한나라당은 대응팀을 가동하는 등 신속대응 체제를 유지하며 긴장을 늦추지 않았다. 범여권이 남북 정상회담을 대선판을 흔들 수 있는 호재로 삼아 ‘10월의 이변’을 노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본보와 코리아리서치센터(KRC)가 6일 실시한 여론조사 결과를 보면 한나라당의 걱정은 기우에 불과했는지도 모른다. 정상회담 이후 노 대통령의 국정 운영에 대한 긍정적 평가가 9월 17일 조사 때(27.9%)에 비해 22.7%포인트나 상승했지만, 범여권 대선주자들의 지지율은 답보 상태에 머물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명박 후보의 지지율은 오히려 2.8%포인트가 올랐다.

대통합민주신당 관계자들은 남북 정상회담에 힘입어 동반 상승해야 할 범여권 주자들이 불법 동원 경선 논란에 서로 발목이 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더욱이 진흙탕 싸움의 주역들은 현 정권의 주축으로 야당을 ‘반(反)개혁’ ‘구태 세력’으로 낙인찍던 인물들이기에 부정 경선 폭로전의 타격을 더 크게 받고 있다는 얘기다.

여당 의장 두 번과 통일부 장관을 지낸 정동영 전 열린우리당 의장은 캠프 사무실이 대통령의 명의도용을 비롯해 무더기 허위 선거인단 등록에 관련된 혐의로 경찰의 압수수색 대상이 됐다.

‘실세 총리’로 현 정부의 정책집행을 총괄하던 이해찬 전 국무총리는 ‘친구’이자 ‘동지’였던 정 전 의장을 향해 ‘무도한 불법세력’ ‘요괴’ 등 독설을 퍼붓고 있으나 자신의 캠프도 부정 경선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공격을 받고 있다.

주자들이 잇따라 폭로하는 ‘박스떼기’ ‘PC떼기’ ‘콜떼기’ 등 신종 반칙 경선은 어느 한 캠프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 당 관계자들의 걱정이다. 더욱이 ‘민주’와 ‘정치개혁’을 전매특허처럼 내세우며 국정을 주물러 온 주역들이 결국 이 정도밖에 안 되느냐는 생각에 배신감과 허탈감을 나타내는 유권자가 갈수록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 같은 불량 부정 경선으로 우여곡절 끝에 후보가 뽑힌다 해도 남북 정상회담이 아니라 더한 것을 갖고 ‘10월의 이변’을 도모해도 백약(百藥)이 무효일 것 같다는 게 대통합민주신당의 분위기다. 원점에서 다시 시작해 떳떳하고 당당한 경선을 치르거나 아니면 야당 할 각오를 하는 것이 142석의 원내 1당이 사는 길일지도 모른다.

박성원 정치부 차장 swpar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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