쓰레기 더미 속에서도 백미(?)는 선물상자들입니다. 내용물만 쏘옥 빼낸 채 버려진 상품의 포장을 볼 때면, 특히 명절 선물의 포장을 볼 때면, 배보다 배꼽이 크다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이번에 선물로 받았던 꿀단지는 이런 생각을 확인시켰습니다. 물건을 운반하기에는 너무나 질이 좋은, 마치 치마저고리감이라도 될 것 같아 보이는 예쁜 보자기로 싸여 있었습니다. 아까워도 그 천으로 다른 뭔가를 할 것도 아니니 그 보자기는 분명 그냥 버려질 것입니다. 보자기 안의 종이상자를 뜯고 나니 그 안에 근사하게 옻칠을 한 나무상자가 들어 있습니다. ‘에이, 나무상자는 재활용도 안 되는데….’
상자를 열어 보니 아주 자그마한 단지가 들어 있습니다. 상자와 단지 사이에 잔뜩 들어가 있는 고운 헝겊들도 다 버려야겠지요.
마지막으로 꿀단지를 열었습니다. 아, 조금은 헛헛한 웃음을 짓게 됩니다. 묘하게도 겉에 비해 내부 공간이 너무나 적었습니다. 마치 요술항아리처럼….
별로 유쾌하지 않은 이 기분은, 사과 상자의 맨 윗줄에 담긴 번듯한 사과에 비해 그 아랫 줄에 놓인 사과의 형편없음을 확인했을 때의 짜증스러운 씁쓸함과 비슷한 것이었습니다. 왜 많은 포장 상품은 윗줄에 비해 아랫줄이 안 좋을까요.
이런 포장재들이 가져오는 부가가치가 뭘까. 보내는 사람의 아낌없는 성의? 받는 순간의 즐거움? 하지만 아마도 대부분의 받는 사람이 갖다버릴 땐 저처럼 투덜거릴 것 같습니다.
예전에 제가 어렸을 적에는 어쩌다 만나는 근사하게 생긴 포장상자들을 마치 귀한 보물처럼 여겼지요. 보관함이 되기도 하고 때론 장난감도 되면서 집안에서 요긴하게 쓰였는데…. 앗, ‘옛날에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것을 보니 이젠 저도 제법 나이를 먹었나 봅니다.
이젠 정말 유용하게 쓰일 것같이 생긴 것들조차 모두 다 쓰레기통에 쌓이는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렇듯 물건이 차고 넘쳐나는 건 그만큼 우리가 잘살게 되었다는 얘기겠지요. 하지만 단순히 근사하게, 혹은 좀 더 크게 보이려는 이유로 이렇게 많은 자원을 낭비하면 안 된다고 누구라도 생각할 것입니다.
다들 문제라고 생각하면서도 왜 우리의 상품 포장은 점입가경이 되는 것일까요.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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