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의 인생 훈수]네가 프로된 날이 내 인생 최고의 날

  • 입력 2007년 10월 11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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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훈 9단이 2001년 천원전에서 생애 첫 타이틀을 따자 대국장에 응원하러 나왔던 아버지 박광호 씨가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영훈 9단이 2001년 천원전에서 생애 첫 타이틀을 따자 대국장에 응원하러 나왔던 아버지 박광호 씨가 축하의 말을 건네고 있다. 동아일보 자료 사진
박광호 씨가 아들 박영훈 9단에게

아빠 인생에서 가장 기뻤던 순간은 언제였을까. 해답은 10여 년간 써 온 아빠의 바둑 일기 안에 있었다. 1999년 8전 9기 만에 네가 프로에 입단한 날을 ‘내 생애 최고의 날’로 써 놨었지. 어려서부터 셈이 빠르고 암기를 잘해 시켜 본 바둑이 직업이 된 거지.

입단까진 정말 힘들었지. 한국기원 연구생이던 너를 강호에 숨은 아마 고수들과 대결시켜 자유로운 상상력을 발휘하는 바둑인으로 키우겠다고 자퇴시켰는데 그게 자충수였는지는 지금도 모르겠다.

영훈아, 연구생을 나오면서 우리가 다짐했던 말 기억나니. ‘패배를 두려워 말자. 많이 지자. 수없이 많은 아마 강자의 매운 솜씨를 맛보자. 강자 있는 곳에 언제나 전투 태세를 갖춘 영훈이가 함께하자…’고.

전국 아마추어 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너의 고사리 손목 잡고 전국 곳곳을 돌아다녔다. 지방대회에서 첫판에 지고 밤새워 운전대 잡고 새벽녘에 서울로 돌아온 것이 한두 번이 아니었다. 패배도 ‘마이 묵었다 아이가’. 욕심 넘치는 아빠의 눈높이에 맞추려 꽤나 애썼던 세월이었어.

프로 기사가 된 뒤 중요 대국에서 지고 나서도 승자가 사 주는 저녁밥을 얻어먹고 귀가하는 좋은 비위는 그 옛날 숱하게 경험했던 학습 효과 덕분일까.

남의 부탁을 거절 못 하는 순한 성격이 승부사로서 방해가 되지 않을까 걱정한 적도 있었다. 하지만 낙천적이고 패배를 훌훌 털어 버리는 네 성격이 수많은 아픔을 겪어야 하는 승부세계에 어울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영훈아. 넌 지금까지 타이틀을 열 번 획득했지만 겨우 만 22세다. 네 바둑 인생은 지금부터 시작이다. 이젠 네 기보에 책임을 져야 해. 많은 후배들이 네 기보를 놔 보고 공부하잖아. 감각에 의존하는 속기 대국이 아니라면 한 판의 작품을 엮어 나가는 과정을 소중하게 생각하고 한 판 한 판에 최선을 다하라고 당부하고 싶다.

가끔 너랑 재미 삼아 프로기사 세계 랭킹을 뽑곤 하잖아. 너 스스로를 상당히 높은 랭킹에 올려놓는 네 자신감에 아빠는 뿌듯하다. 아직은 네가 1등이 아니지만 아빠는 믿는다. 네가 안달복달하지 않고 지금처럼 뚜벅뚜벅 노력하면 언젠가 세계 정상에 오르리라는 걸.

네 의지와 상관없이 어린 나이에 아빠의 의지로 프로가 된 너이기에 아빠는 항상 빚진 마음이다. 네 나이가 되면 아버지하고 멀어지는 게 보통이라는데 우리는 친구처럼 친하게 지낼 수 있어 다행이다. 내년 설날엔 명절 기념으로 아빠와 3점에 덤 5집을 주는 바둑 한 판 둘 수 있겠지? 아빠가 아닌 아마추어 팬(아마 6단)으로서의 부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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