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김창혁]돌아온 이인제

  • 입력 2007년 10월 14일 19시 57분


민주당 조순형 후보가 사퇴했을 때 마음 한편으론 ‘차라리 잘됐는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을 했다. 무슨 정치적인 이유가 있어서 그런 것은 아니다. 조 후보의 선거 사무실 개소식 때 봤던 두 장의 사진이 뇌리를 영 떠나지 않아서였다. 영등포 반(半)지하 사무실 벽엔 해공 신익희(海公 申翼熙), 유석 조병옥(維石 趙炳玉) 선생의 사진이 나란히 걸려 있었다.

이승만 대통령에 맞서 1956년과 1960년 대선에 각각 출마했던 두 야당 지도자 해공과 유석은 공교롭게도 유세 도중 차례로 유명(幽明)을 달리했다. 유석은 조 후보의 부친이다. 늘 도서관에서 의정활동 준비만 하던 조 후보에겐 전국 유세가 쉽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이도 72세다. 혹시 건강이라도 해치지 않을까 하는 걱정도 없지 않던 터였다.

그러고는 민주당 경선을 잊고 있었다. 대통합민주신당의 경선은 솔직히 쳐다보기도 싫었다. 머릿속으로는 ‘이판사판, 난장판, 야바위판, 개판 5분 전’이라는 비속어만 맴돌았다. 듣도 보도 못한 무법(無法)선거로 경선을 치른들, 그렇게 선출된 후보가 국민에게 무슨 말을 할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런데 불쑥, 정말 불쑥, 이인제라는 이름이 ‘대선 신경세포’를 자극했다. 이 후보 자신은 ‘불쑥’이라는 말에 동의하지 않을지 모르겠지만….

내일 결정되는 민주당 대선후보는 이 후보가 거의 확실한 모양이다. ‘가만, 그렇다면 이인제와 신당의 정동영, 손학규 후보 중 한 사람, 그리고 문국현 전 유한킴벌리 사장이 후보단일화를 하게 된단 말인가?’ 한발 비켜서서 범여권을 바라보고 있던 몇 사람이 필자에게 “매우 재미있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했다. 그럴 만도 하다. 다들 죽은 줄 알았는데 멀쩡하게 살아 돌아와 “누가 내 자리를 넘보느냐”고 일갈(一喝)하는 형국이 됐으니 왜 그렇지 않겠는가. 이인제 씨가 노무현 후보의 국가관을 비난하며 민주당을 탈당한 것은 2002년 대선을 앞두고 있던 그해 12월 1일이었다. 자민련과 국민중심당을 거쳐 민주당에 복당한 건 올해 5월. 4년 6개월 만에 돌아와 대선후보 자리를 거머쥔 것이다.

이제 이인제는 범여권 후보단일화의 ‘상수(常數)’가 됐다. 과연 후보단일화가 말처럼 쉽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없진 않다. 그러나 범여권의 대부(代父) 역할을 하고 있는 김대중(DJ) 전 대통령이 주문(呪文)을 외듯 후보단일화를 주문(注文)하고 있다. 범여권, 특히 호남 유권자들도 지금은 ‘냉담’에 빠져 있는 듯하지만, 끝까지 그럴 것 같지는 않다. 게다가 장외(場外)주자로 불리는 문국현 씨는 몰라도 이인제, 정동영, 손학규 씨를 돕는 정치세력에는 이번 대선보다 내년 4월 총선의 발판 구축이 더 절체절명의 과제다. 그들은 어떻게든 자기가 선택한 후보를 압박해 후보단일화로 범여권의 전열을 정비하려고 할 것이다.

노무현, 정몽준의 경우가 그랬듯이 후보단일화라는 정치게임은 섣부른 예측을 허락하지 않는다. 올해 상황은 더욱 그렇다. 하지만 내가 궁금한 건 단일화의 결과가 아니다. 그보다는 DJ가, 호남 유권자들이, 그리고 국민이 과연 ‘돌아온 이인제’를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것이다. ‘호남의 자민련’ 소리를 듣는 민주당의 후보에 불과하다고 봤다면 별다른 흥미도 느끼지 않았을 것이다.

김창혁 논설위원 c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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