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력이란 그런 것이다. “권력과 이익 때문에 친해진 사람들은 권력과 이익이 없어지면 멀어진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말이다. 버나드 쇼도 “사람은 정상까지 올라갈 수 있지만 그곳에 오래 머물 수는 없다”고 했다. 권력의 생리를 알기에 낙선하자마자 커피 값이라도 내가 내야 한다며 몸을 낮춘 그 의원은 그래도 현명한 축에 속한다.
권력은 잡을 때보다 놓을 때가 더 어렵다. 술이나 담배를 끊어도 금단(禁斷)현상 때문에 고통을 받는데 권력은 오죽할까. 한번 권력 맛을 본 사람은 단 하루도 권력 없이는 살 수 없다고 한다. 어떻게 하면 이 무서운 권력에 중독되지 않을까.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牧民心書)에 그 답이 나와 있다. 다산은 수령이 부임 후 바른 몸가짐(律己)으로 봉공(奉公) 애민(愛民)의 선정을 펴다가 퇴임 또는 전보(轉補)로 그 자리를 떠나게 됐을 때 지켜야 할 자세 등을 6가지로 정리했다. 목민심서 마지막 장(章)인 제12장 해관육조(解官六條)가 그것이다. 해관, 말 그대로 벼슬(官), 곧 권력에서 벗어날(解) 때의 처신과 상황이다.
茶山의 가르침대로 權力놓아야
첫째는 체대(遞代), 곧 임무교대다. 어떻게 하는 것이 바른 임무교대인가. 다산의 충고다. “천박한 수령은 관아를 자기 집으로 알아 오랫동안 누리려 하다가…퇴임이나 교체 통보가 오면 마치 큰 보물이라도 잃어버린 듯이 한다.…그러나 현명한 수령은 관아를 여관으로 여겨…항상 행장을 꾸려 놓아 마치 가을 새매가 가지에 앉아 있다 훌쩍 날아갈 듯이 한다”(정선 목민심서, 다산연구회 편역)
둘째는 귀장(歸裝)이다. 이임하는 수령의 이삿짐은 가벼워야 한다는 말이다. “맑은 선비의 돌아갈 때의 행장은 조촐하여 낡은 수레와 야윈 말뿐인데도 그 산뜻한 바람이 사람들에게 스며든다.” 재임 중에 토색질로 재물을 모아 바리바리 싣고 가지 말라는 얘기다.
셋째는 원류(願留). 백성들이 수령의 인품과 선정에 감동해 가는 길을 막고 유임을 간청할 정도가 돼야 한다는 것이다. 넷째는 걸유(乞宥). 수령이 형식적인 문서나 법령을 위반했을 때 백성들이 몰려가 임금께 용서를 비는 것으로, 평소 수령에 대한 백성들의 사랑을 보여 준다.
다섯째는 은졸(隱卒). “수령이 재직 중 죽으면 고결한 인품이 더욱 빛나서 아전과 백성이 상여에 매달려 울부짖고 오래도록 잊지 못하는 것”을 말한다. 마지막은 유애(遺愛)다. “죽은 뒤에도 백성들이 그를 사모해 사당을 세우고 제사를 지내면 그가 백성에게 사랑을 남겼음을 알 수 있다”는 것이다.
너무 목가적인 얘기를 한 듯싶다. 우리 현실이 어디 그런가. 임기 말 대통령부터 “진정한 의미의 권력은 시민사회에서 나온다”며 “퇴임하는 나는 권력으로부터 떠나는 게 아니라 진정한 권력 속으로 다시 들어가는 것”이라고 하는 판에 다산의 권고가 무슨 소용이 있겠나. 노무현 대통령이 퇴임 후 추구하겠다는 ‘진정한 권력’이 뭔지는 몰라도 그가 ‘가을 새매’처럼 홀연히 떠나지 않을 것임은 분명하다.
차기 정권에서 獄事피하려면
경남 김해 봉하마을의 ‘노무현 타운’도 그렇다. 역대 대통령 사저(私邸) 중 가장 큰 사저가 수백 평이 넘는 터에 세워지고 있다. 다산이 말한 ‘고향으로 가는 낡은 수레와 야윈 말’과는 너무 대조적이다. 언제나 사회적 약자의 편임을 자임해 온 정권에서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풍경이다.
어디 대통령뿐이랴. 주변 사람들도 모두 ‘해관’과는 거리가 멀다. 어떻게든 권력을 더 누리려고 혈안이 돼 있다. 될성부른 대선 후보를 찾아 이리저리 몰려다니고, 당을 깼다가 붙이기도 한다. 틈틈이 검은돈을 모으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권력에 집착하면 결국 권력이 칼이 되어 자신을 베는 것이 인간사의 필연이다.
참여가 폭발하는 민주화 시대에 산중처사(山中處士)라도 되라는 말이냐고 할지 모르나, 이 정권에서 권력의 한 끝이라도 쥐었던 사람이라면 이제라도 ‘해관’ 두 글자를 가슴에 새기기 바란다. 정권이 끝나는 날, 또 무슨 옥사(獄事)가 벌어질지 모른다.
이재호 논설실장leejaeho @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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