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찬식]하버드대 여성 총장

  • 입력 2007년 10월 16일 03시 01분


371년 역사를 지닌 미국 하버드대는 세계 대학 순위에서 부동의 1위다. 연간 예산 30억 달러(약 2조7600억 원), 발전기금 290억 달러(약 26조6800억 원)로 서울대의 연간 예산 4700억 원, 발전기금 3000억 원과 비교해 각각 5.9배, 88.9배에 이른다. 자존심 강한 이 대학이 개교 이후 첫 여성 총장을 뽑아 취임식을 가졌다. 드루 길핀 파우스트 총장의 첫마디는 “나를 여성 총장이라고 부르지 말고 그냥 총장으로 불러 달라”였다.

▷그의 취임으로 미국 아이비리그 8개 대학 가운데 여성 총장을 둔 곳은 4개로 늘었다. 프린스턴대 펜실베이니아대 브라운대가 먼저 여성 총장을 맞았다. 다른 미국 대학들도 여성 총장이 23%를 차지할 정도로 많다. 저마다 ‘잘난 사람’들이 모인 대학에선 유연한 여성 최고경영자(CEO)가 더 적임자라는 분석도 있다. 하버드를 비롯해 아이비리그의 여성 총장은 모두 타교(他校) 출신이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동종(同種) 교배’를 피한 때문이다.

▷브라운대의 흑인 총장인 루스 시먼스는 취임 이후 10억 달러(약 9200억 원)의 발전기금을 유치해 탄탄한 실력을 과시했다. 파우스트 총장은 하버드대와 래드클리프대의 통합작업을 맡으면서 능력을 인정받았다. 미국 명문 대학들의 총장선출위원회는 후보들을 수백 명 올려 놓고 숙고를 거듭한다. 그런데도 여성 총장이 적지 않게 나오는 것은 오직 능력만을 보고 뽑기 때문이다.

▷한국에선 여자대학이 아니면 여성 총장이 나오기 힘들다. 여학생이 전체 40%인데도 여교수는 16%에 불과하다. 한미 양국 대학의 가장 큰 차이는 한국 대학들이 폐쇄적이고 대학 경쟁력을 미국처럼 절실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데 있다. 파우스트 총장은 취임사에서 경쟁력에 앞서 대학 본연의 역할을 강조했지만, 지나치게 경쟁에만 매달리면 안 된다는 뜻에서 ‘균형 잡기’를 한 것이다. 하버드대는 신입생 선발을 너무 학업능력 위주로 한다는 비판을 들어 왔다. 한국 대학에서 타교 출신 총장, 여성 총장이 늘어나려면 총장을 뽑는 방식부터 달라져야 한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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