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김태환]무늬만 ‘동물보호법’

  • 입력 2007년 10월 29일 03시 08분


얼마 전 미국 민주당의 힐러리 클린턴 대선 후보가 고양이 한 마리 때문에 곤욕을 치른다는 보도가 나왔다. 힐러리 후보는 1993년 백악관에 처음 입성했을 때 차갑고 딱딱한 이미지의 여성이었다. 백악관에서 고양이 삭스를 품에 안고 키우는 모습을 보며 미국인들은 그녀를 따뜻한 사람으로 인식하게 됐다.

그런 힐러리 후보가 얼마 전 냉정한 인물로 낙인찍혔다. 백악관을 떠날 때 고양이를 버렸기 때문이다. 우리 시각으로 보면 뭐가 그리 큰일일까 싶기도 하다. 그녀가 고양이를 길거리에 몰래 버린 것도 아니다. 다른 사람에게 맡기는 등 나름대로 사연이 있을 법한 일이지만 미국 국민은 용납하지 않는 모양이다.

우리의 사정은 어떤가? 그런 일이 뉴스거리나 될지 모르겠다.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애완동물(반려동물)을 키우기 시작한 이래로 지금은 1000만 명 정도가 개와 고양이 등 동물을 키운다. 하지만 한국의 내로라하는 대선 후보가 반려동물을 키운다는 보도를 접해 보지 못한 것 같다.

반려동물을 키우는 인구는 갈수록 증가할 것으로 예상된다. 한편으로 소나 돼지, 닭과 같은 산업동물(식용동물) 역시 국민에게 더욱더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생명공학의 발전에는 동물실험이 그 바탕에 있으며 중요도가 갈수록 더해 간다.

문제는 도시화 과정에서 삶의 터를 잃는 야생동물이 늘어나며 여기서 동물 학대 문제가 대두된다는 점이다. 길거리에 버려지는 개와 고양이가 그렇고, 의약 지식이 거의 없는 일반인이 무분별하게 뿌린 항생제나 스테로이드제 때문에 병든 가축이 그렇고 좁은 공간에서 살아가는 가축이 그렇다.

또 비슷한 실험을 중복으로 진행해 실험동물을 괴롭히다가 죽인다. 생태계가 파괴되어 야생동물이 멸종에 이르는 경우도 점점 많아진다. 이런 문제는 동물복지 차원을 넘어 경제발전 및 국민의 삶의 질과 밀접하게 관련된다. 어떤 관점으로 대처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많이 다를 것이다.

동물보호법이 1993년 제정된 이래 전면 개정돼 내년부터 시행된다. 하지만 동물보호와 국민복지의 측면에서 본다면 현실에 비해 너무나 피상적이고 뒤처져 있다.

개정 동물보호법은 동물등록제 실시, 동물 학대 방지와 보호자의 의무의 구체화,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구성과 동물보호감시관제 실시, 적절한 생활환경조건 제공 등의 내용을 명시해 동물을 좀 더 체계적으로 보호하도록 만들었다. 동물등록제를 실시하면 길거리를 배회하는 개나 고양이를 줄일 수 있고 전염병을 예방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될 것이다.

그러나 동물의 보호나 권리라는 관점보다는 지나치게 행정편의적인 측면이 강하다. 예를 들어 전에는 국가기관이 미아동물을 30일간 보호하게 했는데 개정법은 10일로 단축했다. 또 벌칙 규정이 거의 없어 대부분의 동물 학대와 방치 행위를 처벌할 수 없다. 동물을 잔인하게 죽이거나 상해를 입히는 경우와 동물실험윤리위원회의 비밀 준수조항 위반(500만 원), 동물판매업 등록 위반(300만 원)을 제외한 조항에는 벌칙 규정이 없다.

동물의 배설물을 수거하지 않거나 인식표가 없을 경우 과태료를 부과할 수는 있다. 하지만 동물이 적절한 음식과 운동, 휴식, 수면을 제공받고 아팠을 때 치료받을 수 있는 권리를 명시하고도 이와 관련한 벌칙이나 과태료 부과 조항은 없다.

지금이라도 동물복지 차원에서 관련 법규를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또 동물과 사람이 어떻게 어울려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서도 고민해야 할 때다.

김태환 서울종합동물병원 원장 과학독서아카데미 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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