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전 사장은 또 “기업과 국가는 좀 다를 것 같다. 기업은 개혁하기가 아주 쉽다. 그러나 정부는 많은 견제장치를 해 놓아서 한두 사람의 아이디어로 갑자기 바꿀 수 없을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기업경영과 국가운영은 차이가 있다고 본 것이다. 그랬던 그가 자신에 대한 검증 얘기가 나오자 “검증이 충분치 않았다면 세계적인 다국적기업의 북아시아 총괄사장이나 이사회 회장을 못 했을 것”이라면서 ‘이미 국민의 검증을 받았다’는 식으로 주장했다.
그는 9월 기자간담회에서 “범여권 후보와의 단일화는 99% 가능하다”고 했다가 최근엔 “후보 단일화에는 관심이 없다. 후보를 사퇴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을 돌렸다. 그러면서 “범여권 후보는 이미 국민 후보인 나로 단일화됐다”고 황당한 소리까지 했다.
몇 가지 예를 들었지만 문 전 사장의 튀는 화법과 말 바꾸기는 노회한 정치인 뺨칠 지경이다. 진짜 검증을 거치지 않았으니 원래 성향이 그런 건지, 아니면 국민의 관심을 끌려는 의도된 발언인지 알 길이 없다. 오죽하면 그를 장관으로 기용하려고까지 했던 노무현 대통령이 “문 후보에 대해 잘 모르고, 어떤 견해를 가질 만큼 검증을 거친 분이 아니다”라고 했겠는가.
더 큰 문제는 그가 정상적인 정치 과정을 밟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이를 무시하고 있다는 것이다. 민주사회에서 국가지도자가 되려면 정당 활동과 정치 수업이 필수다. 그래야 국민과 소통하는 법도 배우고, 자연스럽게 국민의 검증도 받게 된다. 때론 넘어지고 다치기도 하지만 그런 담금질 또한 필요하다. 하지만 문 전 사장은 지금껏 그런 과정을 전혀 거치지 않았다. 다른 건 몰라도 정치적 자산은 무일푼인 셈이다.
그러면서도 그는 정상적인 정치 궤도를 걸어왔고, 다수 국민이 선택한 한나라당 이명박, 대통합민주신당 정동영 후보를 ‘국민이 거부한 후보’라거나 ‘낡은 사람’이라고 폄훼한다. 자신의 약점을 가리기 위한 포장이겠지만 정치와 국민을 무시하는 발상이다.
문 전 사장이 정치를 경험할 기회가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정운찬 전 서울대 총장 등과 함께 범여권 대선주자 군으로 이름이 거론되기 시작한 것은 1년이 훨씬 넘는다. 그동안 지방선거와 국회의원 재·보궐선거, 여권의 경선이 있었지만 그는 스스로 움직이지 않았고 정치권의 러브콜에 응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없었거나, 아니면 지금처럼 예선을 거치지 않고 대뜸 결승전에 뛰어드는 ‘부전승 구도’를 계산했는지도 모른다.
문 전 사장이 계속 대선 후보로 남을 생각이라면 정치 신인답게 좀 더 겸손해져야 한다. 그리고 지금이라도 검증과 경쟁의 장(場)에 자신을 던져야 한다. 비록 자작(自作) 정당이지만 그 안에서나마 제대로 된 경선을 한번 치러 보는 게 어떻겠는가. 그것이 국민에 대한 최소한의 예의일 것이다.
이진녕 논설위원 jinny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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