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압적 동물성 앞에 진저리 차라리 식물로 살고픈 여자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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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소설 ‘채식주의자’를 낸 소설가 한강 씨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폭력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새 소설 ‘채식주의자’를 낸 소설가 한강 씨는 “육식으로 상징되는 폭력적인 세계를 살아가는 인간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보여 주고 싶었다”고 말했다. 김미옥 기자
한강씨 연작소설 ‘채식주의자’

한강(37) 씨는 대학 때 ‘이상 전집’을 읽다가 한 문장에 멈췄다. “나는 인간만은 식물이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명백히 동물인 인간에 대해 이 천재는 왜 그렇게 소망했을까. 한 씨는 이상이 속한 시대를 그려 보았다. 앞을 가늠할 수 없었던 식민지 시대. 폭력적인 세상을 살아 내야 했던 예민한 문인 이상은 인간이 식물이기를 소망했다.

공격, 쟁탈, 약육강식, 부패…. 세계의 폭력을 상징하는 단어는 모두 동물에 속한 것이다. 한 씨는 연작소설 ‘채식주의자’(창비)를 통해 이 동물성에 온몸을 다해 저항한다. 지난달 31일 만난 그는 “고기를 먹고 먹이는 세상의 본질이 어떤 것인지 극한까지 보여 주고 싶었다”고 밝혔다. 그러고 보니 그가 새 소설을 선보인 지 5년 만이다. 아들을 키우고 교수(서울예대 문예창작과)로 학생들을 가르치면서 분주하게 보냈던 시간이다.

그는 “연작 중 ‘채식주의자’와 ‘몽고반점’은 컴퓨터 대신 손으로 썼다”고 했다. 손가락 관절이 아파서 컴퓨터 키보드를 두드릴 수가 없어서다. 나중엔 손목이 아파 손을 쓰지 못하게 됐고, 2년여 지나서야 다시 컴퓨터 앞에 앉았다. 볼펜을 거꾸로 잡고 자판을 두드렸다.

“‘진기명기’에 나가도 되겠다는 얘기를 들을 정도로 빨리 치게 됐어요.”

연작 ‘나무불꽃’은 그렇게 썼다. 지금은 다시 손가락으로 자판을 두드릴 수 있지만, 연작 세 편이 묶인 ‘채식주의자’는 그가 겪었던 몸의 고통이 고스란히 담긴 작품이다.

‘채식주의자’는 육식을 거부하는 여성 영혜에 관한 이야기다. 부친이 강제로 영혜의 입에 고기를 집어넣으려 하자 영혜는 그 자리에서 손목을 긋는다. 이어 연작 ‘몽고반점’에서는 영혜의 형부인 비디오 아티스트 ‘나’는 그간 해 왔던 비디오 작업에 환멸을 느끼고 새로운 작품을 꿈꾸면서 영혜를 모델로 세운다. ‘나무불꽃’에서 정신병원에 입원한 영혜의 수발을 맡은 언니 인혜는 나뭇가지가 되겠다는 동생을 지켜보면서 속을 태운다.

식물이 되기를 택하는 여자를 그릴 만큼 한 씨에게 세계는 폭압적이다. “두 번의 세계대전을 겪으면서 ‘인간적’이라는 말은 욕설이 됐다는 얘기가 있어요. 한편으로는 성스러움을 추앙하면서 또 한편으로는 살육을 저지르는 게 인간입니다. 나는 1980년대 마지막 학번이고 광주가 고향이어서 1980년대의 폭력적 상황을 체험했습니다. 그 시대는 지났지만 여전히 어느 곳에선가 전쟁이 계속되고 살인이, 폭행이 일어납니다. 이런 세상에서 인간이고 싶지 않은 인간의 이야기를 쓴 거예요.”

그러면서 작가는 작품을 통해 독자에게 피와 살이 흐르는 당신은 인간으로 살고 싶으냐고 묻는다.

연작 중 ‘몽고반점’은 2005년 이상문학상 수상작이다. 수상 작품집이 나오면서 계약기간에 묶여 계획한 연작을 2년 전에 완성해 놓고도 책으로 내지 못했다. “얘(‘몽고반점’)가 그렇게 오랫동안 혼자서 다닐 줄 몰랐어요. 이제 제자리에 차례를 맞춰 놓을 수 있게 됐지요.” 그러나 작품을 ‘얘’라고 살갑게 부르는, 작품을 끝내면 그 작품처럼 살았다는 느낌 때문에 진이 다 빠진다는 작가는, “너무나 쓰고 싶은 마음 때문에 다시 컴퓨터 앞에 앉게 된다”며 웃었다. 소설가 한승원의 딸이 아니라 일찌감치 ‘작가 한강’으로 더 잘 알려진 그. “식물성에 대한 얘기는 할 만큼 했다고 생각하며 다른 글감을 찾아 나설 것”이라고 담담하게, 그러나 단호하게 말을 맺었다.

김지영 기자 kim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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