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이인제 정동영의 ‘변칙’
자유민주주의는 헌정주의(constitutionalism)를 기초로 한다. ‘그놈의 헌법’이라고 대통령이 헌법을 공격하면 최악의 경우 탄핵을 면치 못한다. 이처럼 헌정주의나 ‘법의 지배(rule of law)’는 지배자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예방한다. 이와 비슷한 맥락에서 ‘정당정치의 제도화’가 필요하다. ‘정당정치의 제도화’란 무엇인가? 미국이나 영국의 양당제처럼 정당이 제도화된 기구로 안정성과 지속성을 가짐을 뜻한다. 정당정치가 제도화되면 제아무리 뛰어난 정치지도자라 할지라도 정당이라는 제도적 틀 내에서 움직여야 한다. 요컨대 사당(私黨), 붕당(朋黨)이라는 민주화 이후 한국 민주주의의 고질병은 나타나기 힘들다.
YS(김영삼 전 대통령)와 DJ(김대중 전 대통령)는 군정을 종식시키고 선거민주주의를 확립한 공적을 남겼으나 자신의 이해관계에 따라 정당을 새로 만들거나 없애거나 통폐합하는 등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끊임없이 교란했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렇다면 3김 이후의 정치인은 어떠한가? 모두 3김 정치의 극복을 내걸지만 정당정치를 교란한다는 점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올 대선 정국의 주요 흐름을 살펴보자. 손학규 전 경기지사의 한나라당 탈당과 여권 경선 후보로의 변신은 명백한 정당정치의 파괴행위였다. 국민중심당에서 민주당으로 온 지 얼마 안 된 이인제 의원의 후보 당선은 ‘철새의 성공’이라는 저급한 선례를 남겼다.
열린우리당을 위장폐업하고 약간의 분칠로 대통합민주신당을 신장개업한 행위는 무책임 정치의 전형이었다. 이 점에서는 열린우리당 존속을 주장한 노무현 대통령이 옳았고, 당의장을 두 번이나 지냈으면서 탈당한 정동영 후보가 틀렸다. 아무리 인기가 없어도 그 이름으로 노력해 국민의 선택을 받는 것이 책임 있는 자세이자 정당정치를 안정화하는 길이었다.
이렇듯 정당정치가 교란되는 속에서 단연 돋보인 모습이 박근혜 의원의 깨끗한 경선 승복이었다. 한국 정당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 준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한나라당은 민주주의에 대한 오랜 콤플렉스에서 벗어나 정당정치의 제도화라는 시대적 과제 수행에서 앞서 나갈 수 있게 됐다.
그런데 복병이 나타났다. 이회창 전 총재의 무소속 출마 움직임이다. 이명박 후보의 낙마 또는 유고에 대비한 스페어(spare) 후보, 막판 단일화 등 희한한 논리가 동원된다. 한나라당 후보로 두 번이나 대선에 출마했던 그의 무소속 출마는 정당정치의 제도화에 정면으로 역행하는 행위다. 더불어 박근혜 의원의 담대한 결단으로 축적된 소중한 자산을 송두리째 날려 버리는 행위이기도 하다.
얼마 전 이 전 총재는 “우리나라의 선진국 진입은 경제성장이 아니라 법치주의의 확립, 국민의 정신적 성장에서 찾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면 공감이 가는 말이다. 경제성장이 대단히 중요함은 틀림이 없지만 그것만으로는 선진화를 이룰 수 없다.
이회창 출마 시도는 자기 부정
이제 이 전 총재는 스스로에게 되물어야 한다. 자신의 출마가 법치주의의 확립과 국민의 정신적 성장에 도움이 되는가를. 답은 이미 나와 있다. 그의 출마는 법과 원칙을 그토록 강조해 왔던 자신에 대한 전면 부정임과 동시에 정치에 대한 국민의 냉소주의를 부추길 것이 명약관화하다. 이 전 총재의 현명한 판단을 기대한다.
신지호 자유주의연대 대표 뉴라이트재단 상임이사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