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이신화]PKO 참여, 국민 관심 아쉽다

  • 입력 2007년 11월 2일 03시 03분


이라크 자이툰부대의 완전 철군 시한을 내년 말까지 한 번 더 연장하는 안의 국회상정을 둘러싸고 ‘국익을 고려한 선택’과 ‘국민과의 약속 파기’란 주장이 팽팽하게 맞서고 있다. 한미동맹의 중요성 및 자원경제외교의 교두보 확보를 강조하며 파병연장에 찬성하는 측은 한국군의 성공적인 구호재건 활동이 현지인의 칭송을 받고 있으며 국가위상 제고에 보탬이 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면, 결정 철회를 주장하고 있는 측에서는 향후 우리 기업의 이라크 진출 확대가 불확실한데도 아무런 명분이나 실리도 없이 실패한 미국의 ‘침략전쟁’에 동참하는 것을 반대하고 있다.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진 사실은 아니지만, 그동안 유엔평화유지활동을 포함한 국제평화활동 참여 요원들의 신속한 파견과 정부 차원의 지원을 위한 법률안을 통과시키려는 노력이 일부 국회의원을 중심으로 진행돼 왔다. 최근에는 새로운 관련 법안이 국회 통일외교통상위원회에 제출됐지만 국회 본회의 통과 여부는 불투명하다.

국제평화유지활동(PKO)이란 넓게는 국제평화와 인류공영이란 가치구현을 위해, 더 구체적으로는 분쟁지역의 평화와 안전을 회복·유지하기 위해 유엔을 비롯한 국제사회가 취하는 활동이다. PKO는 크게 유엔이 직접 주도하는 평화유지활동과 유엔의 승인하에 지역기구나 특정 국가가 임명한 사령관이 작전지휘권을 갖고 경비도 개별 파견 국가가 지원하는 다국적군 형태로 나뉜다. 따라서 소말리아나 동티모르의 유엔 PKO에 파견된 우리 병력과 이라크에 파병된 자이툰부대에는 분명한 차이가 있다.

국력 비해 옹색한 파견 규모

우리의 경제력과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면서 국제평화활동 참여 요구도 점차 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이에 충분히 부응하지 못하고 있다. 올 10월 기준으로 유엔 주도의 PKO 규모는 10만 명이 넘지만, 우리의 참여 규모는 민간과 군을 합쳐 393명에 불과하다. 이것도 지난여름 356명의 레바논평화유지단 파견군을 포함한 것이어서 PKO의 활동 범위나 규모는 국력에 비해 초라하다. 파견 절차의 복잡성 때문에 신속한 파병이 힘든 것도 문제이다.

이 같은 문제들은 해외파병을 비롯한 국제평화활동에 대한 국민적 이해도와 공감대가 미흡한 것과 관련이 있다. 특히 다국적군 참여를 위한 파병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한국군과 경찰, 민간인의 유엔 PKO 임무를 포함한 모든 유형의 국제평화활동에 대한 부정적 시각도 커지고 있다. 더욱이 이라크와 레바논 등에 파병된 한국군 문제가 국론분열과 대선 정국의 논란거리로 비화하면서, 효과적이고 신속한 PKO 파견을 위한 법안의 국회 통과도 성과를 얻지 못하고 있다.

따라서 해외파병의 경우 유엔 PKO와 다국적군 참여의 차이점에 대한 대국민 ‘설득작업’은 국제평화활동을 위한 제도 마련이나 임무 수행에 앞서 필요한 선결과제다. 또 하나 지적할 것은 “우리 파병부대의 주 임무는 위험이 크지 않은 구호재건활동”이라는 점만을 강조하는 정부의 태도가 올바른 대국민 홍보 전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개인의 선택, 국가적 이익, 국제사회의 도덕적 당위성이라는 세 가지 요소가 충족되는 파병이라면 설사 인적, 물적 피해가 난다고 하더라도 꾸준히 지속되어야 한다는 점에는 많은 사람이 동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많은 나라에서 파병을 결정하는 기준은 인명피해의 발생 가능 유무이다. 특히 우리 정부와 국민은 사상자 발생에 지나치게 민감하다. 이는 남북 대치상황에서 군대를 ‘명백한 적에 대항한 국민의 집합적 노력의 산물’로 여겨 온 인식과 무관하지 않다. 따라서 해외파병이 자국 방어와 무관하다고 판단하면 이에 대한 회의적 시각이 강하게 나타나는 듯하다.

국익-도덕적 당위성 충족돼야

그러나 주목할 점은 오늘날 PKO 참여는 ‘한 개인이 군대의 일원으로서 지구촌 분쟁과 인도적 위기상황의 해결과 같은 인류 보편의 가치를 위해 헌신하는 것을 원칙과 철학으로 삼는다는 것이다. 타국에서 발생한 자국 군인의 인명 피해에 대한 안타까움과 분노는 세계 모든 나라에서 공통적으로 관찰된다. 다만 우리와 차이가 있다면 자신들의 아들딸이 무엇을 위해 죽어갔는지, 또 그들을 어떻게 기억하고 그 죽음을 헛되이 하지 않을 것인지에 대한 진지한 고찰이 애도의 눈물과 동시에 이루어진다는 데 있다.

이신화 고려대 교수 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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