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칼럼/김진만]행복이 꽃피는 연극가족

  • 입력 2007년 11월 3일 03시 03분


도깨비 가족. 한 친척이 우리 가족에게 붙여준 별명이다.

우리 가족 구성원은 이렇다. 장인 전무송, 장모, 내 처 현아, 처남 진우, 그리고 나와 강아지 초코. 이 중 장모와 초코를 빼고 모두 연극을 한다. 장인과 처, 처남, 그리고 나까지 모두 배우다.

그래서 우리 가족은 출근 시간도 없고 퇴근 시간도 없다. 어느 날 늦게까지 집에 머무신 한 친척이 우리 가족의 일상을 보고 “남들이 보면 도깨비 가족이라 그러겠다”고 하셨다. 연극 일을 하는 사람들은 귀가 시간이 일정하지 않다. 집에서 나가는 시간도 마찬가지다. 야심한 시간에 하나둘씩 들어와서 새벽에야 식탁에 모여 앉아 늦은 저녁식사를 마치 아침 먹듯 하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눈다. 주변의 이웃들도 “저 집은 하루 종일 조용하다 밤만 되면 시끌벅적하다”고 할지 모르겠다.

우리 가족은 모두 꿈을 좇는다. 요즘은 가족 가운데 세 사람이 한 무대에 올라 공연을 하고 있다. 장인, 처, 나, 이렇게 세 사람이 홍익대 부근 소극장에서 연극에 함께 출연한다. 평생 자신의 꿈인 연극에만 매달리며 가족을 희생시키고 결국 무대에서 쓰러진 노년의 희극 배우에 대한 얘기다. 장인이 노배우로, 나와 처는 아들과 며느리로 등장한다. 작가, 연출, 배우 모두에게 자기 얘기고 가족 얘기가 되는 연극이다.

극 중에서는 가족 중 한 사람만이 자신의 꿈을 좇아 평생 연극을 하지만 우리 가족은 장모 한 분을 제외하곤 모두 자기가 하고 싶은 연극을 한다. 한국에서 아니 이 세상에서 자신이 하고 싶은 일, 정말 잘할 수 있는 일을 일평생 할 수 있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그런 면에서 우리 가족은 참 행복하다.

많은 사람이 생활을 위해 꿈을 접고 살아간다고 한다. 여기서 생활이라 함은 경제적인 부분이 언제나 큰 비중을 차지한다. 모두가 얘기한다. 연극은 배고픈 직업이라고. 그렇긴 하다. 선배들의 얘기를 들어 보면 경제적으로 힘든 일을 겪지 않은 경우가 거의 없다. 지금 내가 일하고 있는 극장과 극단을 봐도 그렇다. 공연 한 편을 제작하기 위해서는 상당한 액수의 자금이 필요하다. 소극장 연극이라 해도 편당 1억 원 정도가 든다. 이에 비해 소득은? 안타깝게도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지금 내가 맡은 일은 극장 기획실장과 연출. 기획 단계에서 관객 입장으로 얻을 수익은 거의 생각하지도 않는다. 보통 30% 정도의 객석 점유율을 기대하지만 현실에서는 그마저도 힘들다.

하지만 흔히 듣게 되는 ‘가난한 연극쟁이’라는 말은 잘못이다.

지금 가족과 함께 만들고 있는 연극에서 주인공인 노배우가 던지는 대사처럼 “나는 한순간이라도 사람들이 웃는 걸 보는 게 좋거든. 그게 내가 할 일이고”.

연극인들은 대개 경제적으로 그리 풍족하지는 않다. 하지만 그걸 ‘가난한 삶’이라고 할 수 있을까. 꿈을 위해, 하고 싶은 일을 하기 위해 애쓰는 삶이 불행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오히려 행복하다.

연극에서는 가족 구성원 가운데 한 사람만이, 더구나 가장이, 혼자서 개인의 꿈을 좇는 데 몰두한다. 하지만 우리 가족은 모두 함께 같은 꿈을 좇는다. 각자의 꿈이 곧 가족의 꿈과 다르지 않아서 다행이다. 물론 장모께는 죄송하다. 장인과 아들딸만으로도 지겨우셨을 텐데 사위마저 이쪽 일을 하는 사람이니. 젊은 시절 장인 장모께서는 연극 속에서와 같은 어려움을 많이 겪으셨다고 한다. 하지만 그런 위기를 잘 극복한 지금 우리는, 관객이 웃음 짓는 얼굴을 보는 즐거움에 언제나 마음 넉넉한, 행복한 ‘도깨비 가족’이다.

김진만 연극인·극단산울림 기획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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