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대 노인이 대통령을 목표로 삼은 정치인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조상을 잘 모시려는 갸륵한 후손에서 온갖 수단을 동원해 권력을 잡으려는 야심가로 변해 보인다. 이회창(72) 전 한나라당 총재가 그런 모습이 됐다. 그에게 묏자리를 잡아 준 풍수지리 전문가는 “이 전 총재의 새 선산은 후손 중 군왕이 나올 수 있는 군왕지에 속하는 명당”이라는 말까지 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대선을 앞두고 조상 묘를 이장한 뒤 4번째 도전에 성공한 선례도 있다. 이 전 총재는 지난날 김 전 대통령의 ‘대통령병(病)’을 비난했지만, 이제 자신이 그런 소리를 들어야 할 차례 같다.
▷역술가와 풍수지리 전문가의 말에 후보들이 울고 웃는 일은 한국 대선의 낯익은 풍경이다.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가 집을 옮기려다 포기한 이유로 “지금의 한옥 터가 좋다”는 풍수지리 전문가의 말을 꼽은 측근이 있었다. 정동영 대통합민주신당 후보의 측근도 일찌감치 그의 경선 승리를 예언한 50대 남성 역술가 얘기를 가끔 하는 모양이다. 각각 독실한 기독교 신자와 가톨릭 신자인 두 사람이 그럴 지경이니 종교가 없는 후보들은 오죽할까.
▷요즘 길거리와 지하도에까지 진출해 노점 형태의 영업을 하는 역술가가 크게 늘었다. 외국에서 들어온 타로 카드 점에 심취하는 젊은이도 많다. 하지만 명색이 21세기인데 조상의 음덕이나 점술가의 말에 기대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겠다는 국민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다. 오늘 이 전 총재가 출마 선언을 하며 아무리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워도 많은 국민은 “조상님을 옮겨 모신 명당 덕 좀 보고 싶다”는 소리로 들을 것도 같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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