훌륭한 인격을 갖춘 양심적 보수 인사가 적지 않음을 잘 알고 있다. 하지만 이런저런 기회에 보수 성향의 유력 인사들을 만나다 보면 실망감을 느낄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사물을 바라보는 눈이 폐쇄적이고 단선적이라 놀라울 정도다. 그들이 세상을 살아가는 기준은 너무나 세속적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돈과 출세와 자녀교육이 담론의 핵심이다.
그들만의 잔치, 이를테면 무슨 축하연이니 출판기념회 같은 데를 가 보면, ‘천하의 수재와 의인과 애국자’가 다 모여 있다. 주인공에 대한 덕담도 정도 나름이다. 칭찬도 지나치면 놀림이 된다. 그렇게 자신들을 모르는지 측은할 지경이다.
한국의 보수, 봉사정신 부족
그런 모임 어느 곳에 가도 세상일에 대한 의분(義憤)은 찾아보기 힘들다. 가난한 사람에 대한 배려나 사회적 약자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은 약에다 쓰려 해도 찾을 수가 없다. 그러면서 어른 대접을 받고 싶어 한다. 요즘은 집안에서도 가장이 솔선수범하지 않으면 영이 안 선다. 지금이 어느 시절인데 ‘에헴’ 하면서 권세 누리고 싶어 하는가. 목욕하지 않고 향수만 뿌린다고 냄새가 사라지는가. 이러니 보수가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서양 이야기 좀 하자. 스페인의 사상가 호세 오르테가이가세트는 ‘대중의 반역’이라는 책에서 대중을 난도질한다. 무식하고 능력도 없는 대중이 사회를 지배하려 드는 것이 우리 시대의 특징이라고 단정한다. 보수주의 하면 아무래도 영국의 에드먼드 버크를 꼽게 된다. 그도 대중이 상류계층에 복종해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귀족이 정치 일선을 담당해야 사회가 개선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두 사람 다 대중을 비하하고 엘리트 지배를 그리워한다. 공통점이 또 있다. 세상을 다스리고자 하는 사람은 남다른 애국심과 희생정신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한다. 오르테가이가세트는 엘리트를 ‘어려움을 자청하고, 봉사의 삶을 살면서도 이것을 압박으로 느끼지 않는 사람’이라고 규정한다. 타인을 고려하지 않으면 야만인이나 다름없다고 역설한다.
버크도 같은 말을 한다. 진정한 귀족이라면 자중자애하고 스스로에게 엄격해야 한다. 자신보다는 사회 전체의 이익을 우선 고려해야 한다. 국민의 안락과 즐거움, 만족 앞에서 모든 것을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자격을 갖춘 사람이 지배해야 나라가 온전하게 유지된다는 것이 보수주의 사상가 버크의 생각이다.
보수주의자를 변화에 대해 두려움을 느끼고 진보 가능성에 대해 의심쩍은 눈길을 보내는 사람이라고 부른다. 그러나 이것이 전부는 아니다. 서구 보수주의는 ‘현재를 지키기 위해서라도’ 발전적 개혁의 필요성을 인정한다. 무엇보다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과 희생정신을 강조한다. 이런 건강한 보수가 버티니 나라가 잘된다.
한국의 보수 세력은 무엇을 지키고자 하는가. 어떤 생각을 하는가. 이명박 씨를 보라. 세상에 저렇게 말도 많고 탈도 많은 대통령후보가 또 있던가. 이회창 씨를 보라. 탈레스는 모든 것을 다 드러내 보여 준다면서 시간을 세상에서 가장 현명한 존재라고 했다. 불과 몇 년 사이에 온 천하에 드러난 ‘이회창표 대쪽’의 실체를 보라. 근엄한 표정이라도 짓지 않았으면 이렇게 실망이 크지는 않았을 것이다.
나라살림 감당할 능력 있나
이런 보수를 통해 우리는 무엇을 기대할 수 있는가. 한나라당이 반드시 집권해야 할 이유라도 있는가. ‘노무현 사람들’이 미워서? 적어도 그들은 세상에 대해 고민은 했다. 방법이 틀렸을지 몰라도 감옥행을 불사하는 치열한 문제의식은 갖고 있었다. 그런데도 ‘잃어버린 10년’이 되고 말았다. 손에 쥐여 주다시피 한 떡도 감당 못 하는 보수에 과연 나라살림을 맡겨도 될 것인가.
한국의 진보 세력은 보수파를 사람 취급도 안 한다. 이런 대접 받는 것, 아니 저 모양의 진보를 만들어 낸 것도 보수의 책임이다. 말이 좀 심한가.
서병훈 숭실대 교수·정치사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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