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이기홍]‘워싱턴 정치 낭인’의 추억

  • 입력 2007년 11월 8일 03시 02분


워싱턴에는 한국 정치인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제3자가 보기엔) 별다른 목적도 없이 워싱턴에 들러 미국 행정부나 의회 인사들을 만난 정치인들은 간담회를 자청해 방미 성과를 자랑한다. 그러면서도 동시에 “나는 (미국 측에) 당당했다”고 은근히 강조한다.

사실 미국 고위 인사들을 만나지 못해 안달을 한 건 ‘가벼운 입’ 때문에 조지 W 부시 대통령과의 면담을 스스로 무산시킨 이명박 한나라당 대선 후보 캠프만은 아니다.

당시 이 후보를 비난한 여권의 고위 정치인 가운데도 정도의 차이는 있을지언정 ‘비중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어 주미 대사관을 채근하지 않는 경우를 별로 보지 못했다.

워싱턴엔 선거가 끝나도 정치인들이 몰려온다. 대부분 패장(敗將)들이다. 선거 패배의 아픔을 공부로 달래겠다며 객원연구원 직함으로 오는 것이다.

워싱턴과 은둔, 상처 달래기는 이미지가 잘 어울리지 않지만 기왕이면 ‘세계의 중심에서 국제적 안목을 넓혔다’는 후광 효과도 건지고 싶은 정치인들에게 워싱턴은 괜찮은 연수지로 꼽히는 것 같다.

이명박 이인제 손학규 세 사람도 그랬다.

하필 이들을 거론하는 이유는 같은 시기에 조지워싱턴대에서 객원연구원을 지낸 세 사람의 워싱턴 생활을 회고하는 지인들의 얘기를 자주 들어 왔기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는 1998년 11월∼1999년 12월 경영대학원에서, 손 전 경기지사는 1998년 가을∼1999년 8월 국제대학원에서, 이인제 후보는 1998년 5개월간 로스쿨에서 연구원 생활을 했다. 이명박 후보는 선거법 위반으로 의원직을 사퇴한 직후였고, 이인제 후보는 낙선의 상처가 아물지 않은 시기였다.

사실 객원연구원은 자기 하기 나름인 자리다. 공무원들의 골프연수 파문에서 보듯 내내 놀다 가도 뭐라 할 사람이 없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하면 세 사람 모두 ‘거드름 피우는 농땡이 연수생’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한인들은 전한다.

이명박 후보에 대해선 소박한 면모를 보였다는 평이 들린다. 시내에서 15km가량 떨어진 버지니아 주의 한 아파트를 빌려 부인과 함께 지냈는데 라면 박스에 전화기를 올려놓고 지낼 정도로 꾸미지 않았다고 한다. 자질구레한 생활 관련 업무들을 직접 다 처리하고 주말에 장을 보러 다니는 모습이 자주 목격됐다. 세미나에서 주제 발표도 몇 차례 했다.

손 전 지사에 대해선 “정말 공부를 열심히 했다”는 평이 들린다. 단신으로 와서 시내의 학교 근처에 작은 아파트를 얻어 지냈는데 차도 사지 않고 항상 버스나 지하철을 타고 다녔다.

이인제 후보는 상대적으로 좀 더 높은 급의 생활을 하는 것 같았다는 평이다. 보좌관처럼 보이는 사람이 차를 운전해 주는 모습이 가끔 목격됐다.

세 사람은 자주 조지워싱턴대 박윤식 교수의 집에 모여 술잔을 기울이고 대화를 나누며 서로를 위로했다. 이, 손 두 사람은 같은 교회를 다녔다. 당시 가까이 지냈던 한 교포는 “워싱턴에선 사이좋게 어루만져 줬던 사람들이 서로를 공격하는 것을 보노라면 정치가 뭔지 실감하게 된다”고 말했다.

2002년 대선 후엔 이회창 정몽준 씨가 스탠퍼드대에 동시에 적을 뒀지만 교류는 별로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다시 격랑의 정치판 복판에 서 있는 이들 전직 미국 ‘낭인(浪人)’을 회고하며 한 교포는 이렇게 말했다.

“정치인들이 과시하느라 미국을 찾을 때와 상처를 달래느라 미국을 찾을 때는 태도부터 다르더라고요. 미련을 버리고 몸을 낮췄던 패자 시절의 마음을 잊지 않아야 할 텐데….”

이기홍 워싱턴 특파원 sechep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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