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코노 카페]한은이 자초한 ‘고액권 초상’ 논란

  • 입력 2007년 11월 8일 03시 02분


《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이 10만 원권 김구, 5만 원권 신사임당으로 결정되면서 5일 마무리됐습니다.

하지만 6개월 동안 계속돼 온 사회적 논란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입니다. 고액권 초상인물 2명을 선정하는 과정에서 한국은행이 위촉한 화폐도안 자문위원회의 민간위원 가운데는 10만 원권 초상인물로 확정 발표된 백범 김구보다 도산 안창호가 초상인물로 더 적합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았던 것으로 취재 결과 밝혀졌습니다.

▶본보 7일자 A12면 참조
“고액권 초상인물 선정과정 석연찮다”

자문위원 A 씨는 “10명의 자문위원 중 한은 측 2명을 제외한 민간위원 8명 가운데 2명 정도만 독립운동가 가운데 김구를 초상인물로 하자고 했고 나머지는 안창호에게 더 높은 평가를 내렸다”며 의혹을 제기했습니다. 또 다른 자문위원 B 씨는 “결과를 보니 한은도 아니고 더 위에서 벌써 다 정해 놓고 형식적인 절차만 거친 것 같다”며 “우리는 그저 ‘방탄조끼’에 불과했다”고 털어놨죠.

인물 선정에 관여했던 자문위원들조차 정부와 한은의 최종 결정에 고개를 가로젓는 난감한 상황이 된 것입니다.

따지고 보면 이번 일은 정부와 한은이 자초한 측면이 많습니다.

한은은 5월에 화폐도안 자문위원회를 구성한 뒤 1차 후보 20명을 선정하면서 명단과 선정 절차에 대해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누가 20명에 뽑혔고 어떤 기준에 의해 선정됐는지 알 수가 없었죠. 한은은 10명의 후보가 4명으로 압축된 사실도 공표하지 않았고 자문위원회 명단도 끝까지 비공개로 해 의문을 증폭시켰습니다.

한은은 7일 “자문위가 최종 결론을 내릴 권한은 없다”며 “한은과 정부가 4명의 후보 가운데 결정을 한 것이고 서로 개성이 다른 자문위원들 의견을 일일이 반영할 수도 없다”고 해명했습니다. 그러면서 “시간이 지나면 자문위 회의록도 다 공개하겠다”며 “한 점 부끄럼이 없이 결정했다”고 강조했습니다.

안창호와 김구는 모두 훌륭한 독립운동가입니다. 하지만 선정과정에서의 불투명성 때문에 고액권 인물 선정 과정을 둘러싼 논란은 앞으로 쉽게 가라앉을 것 같지 않습니다. 더구나 믿고 싶진 않지만 일각에서 의혹을 제기하듯이 만에 하나라도 미리 내정해 놓고 자문위 등의 요식절차만 거쳤다면 더 큰 문제가 아닐까 싶습니다.

김상수 기자 sso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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