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대통령 주도 아래 4년 전 만들어진 열린우리당이 대통합민주신당이라는 선거용 정당으로 위장 재개업한데 이어 이회창 전 한나라당 총재가 강행한 정계은퇴 번복, 탈당, 무소속 출마는 구태의 절정이다. 이념과 정책이 제각각인 정동영, 문국현, 권영길, 이인제 후보가 범여권 통합이니, 후보 단일화니, 반부패연합이니 여태 설왕설래하고 있는 것도 볼썽사납긴 마찬가지다.
그나마 중심을 잡아야 할 한나라당과 이명박 후보조차 이회창 씨의 지능적 반칙에 당황해 대북정책을 변명하고, 뒤늦게 박근혜 전 대표에게 매달리며 우왕좌왕하고 있다. 이 후보가 박 전 대표에게 ‘공동정권’을 제안했다는 얘기까지 나오고 있다. 한 정당 안의 ‘공동정권’이라니, 그런 정당민주주의도 있는가.
박 전 대표는 8월 경선 직후 지지자들에게 “저를 도와주었던 그 순수한 마음으로 정권창출을 위해 힘을 합쳐 달라”고 했다. 그 말이 진정이었다면 탈당 후 독자 출마자에 대한 침묵과 합법적 후보에 대한 외면은 또 다른 의미의 경선 불복이 될 수 있다. 박 전 대표의 애매한 상황 대응은 스스로 천막당사 생활까지 하며 지켜온 당은 물론이고 자신의 이미지도 해칠 우려가 있다.
이회창 씨의 ‘영원한 비서실장’으로 불렸던 권철현 의원은 어제 이 씨의 출마 철회를 호소하며 ‘이회창 전 총재가 돌아올 때까지’ 무기한 단식에 들어갔다. 권 의원은 “이 순간에도 이회창을 존경하고 사랑한다. 그러나 총재님의 출마는 잘못된 것이다. 대의명분, 국민의 기대감, 순리와 절차 모든 면에서 잘못된 것이라고 생각한다”고 고언(苦言)했다. 이회창 씨는 자신의 전 비서실장도 설득하지 못한 채, 명분 없는 보수 분열을 꾀하고 있는 셈이다.
한나라당이 자중지란에 빠지자 신당의 정동영 후보 측은 마지막 네거티브 한 방으로 어부지리(漁夫之利)를 얻으려 하고 있다. 민주화 원로들이 모인 자리에서 “정 후보가 BBK와 김경준에게 너무 기대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까지 나왔다. 자신이 왜 대통령이 돼야 하는지 국민을 먼저 설득해야 할 것이다.
반칙과 변칙, 불복과 네거티브가 판을 치면 지난 대선 때처럼 민심이 왜곡되기 쉽다. 선거의 정당성이 훼손돼 국민통합도 멀어진다. ‘충동구매’의 실수로 또 ‘고통스러운 5년’을 맞지 않으려면 유권자들이 더 똑똑해지는 수밖에 없다. 원산지(原産地) 표시를 확인하고, 유사상표에 속지 않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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