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이순원]‘무조건 이기는 법’의 사회병

  • 입력 2007년 11월 16일 03시 02분


고등학교 3학년 아이들의 대학수학능력시험이 어제 있었다. 다행히 올해는 수능 한파가 없었다. 실제 기온이 올라가든 떨어지든 그동안의 공부를 평가받는 아이들과 그런 아이들을 지켜봐야 하는 학부모 처지에서는 시험 자체가 바로 인생에서 고비마다 겪는 한파일 것이다.

아이들은 시험장 안에서 한 문제 한 문제를 풀며 경쟁한다. 그런 경쟁에 조금이라도 정신적인 힘을 보태려고 부모는 이미 100일 전부터 새벽기도에 들어가기도 하고, 시험 당일 고사장 바깥에서 하루 종일 철문을 잡고 기도하기도 한다.

김포외고 문제 유출 말문 막혀

기도와 기원으로 열성을 보이는 부모나, 그날 집에서 혹은 사무실에서 담담하게 마음속의 격려를 보내는 부모나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에 대해 한 가지 굳은 믿음을 갖고 있다. 부모가 극성스러울 만큼 정성을 보이든, 보이지 않든 우리 아이들이 치르는 시험은 어느 누구에게도 불공평하지 않고 매우 공정할 것이라는 점이다. 물론 더 많이 공부하고, 더 열심히 공부한 학생에게 더 좋은 점수가 돌아가겠지만 시험을 치르는 방식이나 과정만은 모두에게 공정함을 우리 모두 잘 알고 있다.

어쨌거나 아이들은 교실에서 또 시험장에서 그간 자신이 쌓아 온 실력으로 경쟁한다. 뽑는 것은 소수고, 그 문으로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이 다수면 그것은 현실적으로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런 경쟁사회를 지탱하는 룰이 바로 방법과 절차의 공정성이다.

최근 ‘이기는 습관’이라는 책이 서점가의 베스트셀러다. 어떤 대기업의 마케팅팀장을 지낸 유통 사령관이 마케팅에서 성공하려면, 자기 분야에서 최고가 되려면, 자기 필드에서 멋지게 실력을 발휘하려면 꼭 가져야 할 자질과 태도를 알려 주는 책이라고 한다. 그저 열심히 일하는 습관이 아니라 교육과 훈련에서도 이기는 습관을 갖게 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렇게 경쟁 사회에서 살아남는 자가 강한 사람이라는 격언은 이제 우리 사회에서 하나의 미덕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러나 아무리 이기는 습관이 중요하다 해도 엊그제 터진 김포외국어고 입학시험 문제의 사전 유출 사건은 저간의 경위야 어떻든, 시험과 관계있는 사람이든 없는 사람이든 우리 모두를 분노케 한다. 거기에 학부모와 교사, 사설학원의 부적절한 커넥션까지 드러나고 있다.

이런 학원에 학부모들의 상담이 줄을 잇는다는 점도 기가 찰 노릇이다. 다른 문제도 아니고 미래 이 나라를 이끌고 지켜 나갈 재목을 키우는 교육 문제에까지 스며든 이런 몰염치와 뻔뻔함은 대체 어디에 뿌리를 두고 있는가.

사교육 없이는 절대로 특수목적고에 입학할 수 없는 현실이 학부모로 하여금 학원에 줄을 서게 한다. 학원은 또 정보력이라는 이름으로 입학시험 문제까지 뽑아내서라도 다른 학원보다 더 많은 학생을 특목고에 입학시켜야지만 이 바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런 학원들이 아이들의 교육을 좌우하는 현실이 이번 사건을 만들어 냈다.

정당하게 이기는 법 가르치자

그동안 우리는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실 안에서든 밖에서든, 또 자기가 일하는 회사 안에서든 밖에서든 무조건 이기는 법, 어떤 방법을 써서라도 무조건 이기지 않고는 참을 수 없는 습관만 배워 오고 또 강조한 것은 아닌지.

그런 점에서 이번 김포외고의 시험문제 유출은 어느 한 교사와 몇몇 학부모만이 공모해서 저지른 사건이 아니다. 입시제도 운용의 결함에서 터진 문제가 아니라 무조건 이겨야만 하는 습관이 가르친 그릇된 교육의 결과다. 꼭 이기는 법만 가르치기 전에 우리 아이들에게 정정당당하게 이기는 법을 가르치자. 학교든 학원이든 부모든….

이순원 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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