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북한은 북-미관계가 정상화하면 억지력 차원에서 개발한 핵을 보유할 이유가 없다고 하지만 그들의 발언이 진정인지 모르기 때문에 테스트하는 것”이라며 “현재 그 과정이 진행되고 있다”고 했다.
테스트의 통과 기준도 분명히 했다. 갈루치 전 차관보는 “북한이 핵프로그램 포기, 추출한 플루토늄 폐기, 농축우라늄 설비 완전 제거 뒤 국제사회의 검증 등을 거쳐야만 테스트를 통과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내 대표적인 대북 협상론자인 그가 밝힌 북핵 문제의 ‘최종 단계’는 조지 W 부시 대통령이 취임 후 강조해 온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되돌릴 수 없는 수준의 북핵 폐기 원칙을 넘어서는 것이다.
2002년 10월 농축우라늄 프로그램 가동이라는 북한의 ‘배신’을 경험했던 그는 “불능화와 성실한 신고에 이어 북핵에 대한 적절한 처리가 이뤄진 후라야 신뢰가 생길 것”이라며 “대북 정치적 보상도 그때가 돼야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신고’라는 부분에 이르자 갈루치 전 차관보는 1991년 이라크 무장 해제를 위한 유엔특별위원회 부위원장으로 활동하던 시절을 회상했다.
그는 “당시 이라크의 신고는 모두 거짓이었다. 거짓말은 사찰 과정에서 천천히 그리고 고통스럽게 밝혀졌다”며 “같은 일이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은 상상조차 하기 싫다”고 말했다.
1974년 외교관이 된 후 33년간 핵 비확산과 군축 문제를 다뤄 온 전문가의 ‘이유 있는 회의론’을 들으면서 지난달 남북 정상회담이 끝난 뒤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는 확고하다”고 확신에 찬 발언을 했던 노무현 대통령의 모습이 떠올랐다.
노 대통령은 평양에 체류했던 2박 3일 동안 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를 제대로 ‘테스트’한 것일까. 정부는 핵 폐기에 대한 북한의 진심을 먼저 확인하고 경제협력 보따리는 그 다음에 풀어도 된다는 갈루치 전 차관보의 메시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태원 정치부 triplets@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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