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신종호]‘교육 역주행’ 수능 등급제

  • 입력 2007년 11월 27일 02시 52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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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과를 수치로 표시하는 방식과 관련해 올해 사회적으로 국민의 관심을 끈 일이 두 가지 있었다. 하나는 7월부터 실시한 ‘계량에 관한 법률’이고 다른 하나는 얼마 전에 끝난 대학수학능력시험 결과의 등급제이다.

‘계량에 관한 법률’은 상품의 매매나 광고에 평(坪)이나 근(斤)과 같은 비법정단위 대신 m²(제곱미터)나 g(그램) 같은 미터법을 사용하라는 내용이다. 이런 변화에 대해 초기에는 많은 국민이 혼란과 불만을 나타냈으나 공익광고에서 홍보하듯이 내 재산과 상품에 대해 더 정확한 정보를 알 수 있다는 측면에서 필요성을 점차 인정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모든 과목 적당히 잘하는 게 유리

한편 금년부터 수능 결과는 원점수 대신 1∼9등급으로 표시되는 등급점수로 학생과 대학에 통보하도록 바뀌었다. 수능 등급제 시행에 대한 학부모와 학생의 혼란과 불만은 미터법 표시 시행에서 나타난 초기 적응적 혼란과는 거리가 있는 듯하다.

수능 등급제가 미터법 표시와 다른 가장 중요한 측면은 학생이 노력한 결과에 대해 좀 더 정확한 정보를 주지 않는다는 데 있다. 극단적인 경우 현 수능 등급제에서는 더 열심히 노력한 학생의 결과가 그렇지 않은 학생의 결과보다 더 낮게 나타날 가능성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또 수능 등급제는 학생 자신의 적성에 맞는 몇 개 영역에 공부를 집중하기보다 모든 영역에 걸쳐 균등한 노력을 기울이는 편이 훨씬 유리한 시험제도다. 내가 수학을 잘하고 앞으로 물리학자가 되기를 희망해도 수학 공부에 집중하기보다 다른 영역에 균등한 시간을 분배해 고루 공부해야만 한다.

왜 수능 등급제를 실시해야 하는가? 수능 등급제를 찬성하는 사람은 수능의 변별력을 낮춤으로써 상대적으로 고등학교 내신 성적의 반영률을 높일 수 있고, 이를 통해 고등학교 교육정상화를 도모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이런 주장이 맞는 것일까? 대학은 수능 등급제에 따라 학생의 수학 능력을 변별하기 위한 대안적 방안을 자체적으로 모색하고 있다. 수능 난이도에 따라 등급이 비는 등급 공백 현상을 없애기 위해 수능의 난도를 높일 수밖에 없고, 이에 따라 학생의 수능 부담은 그대로 유지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수능 등급제를 통해 결과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가를 자문하지 않을 수 없다.

교육의 결과는 학생의 노력과 능력의 정도를 가능한 한 정확하게 나타내야 한다. 좀 더 정확한 방식으로 지금까지 공부한 결과를 확인해 주고, 이를 바탕으로 개인과 관련한 의사결정이 이뤄지도록 하는 것이 교육적이다. 이런 관점에서 본다면 수능 등급제는 일종의 ‘교육 역주행’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노력에 대한 정확한 결과 줘야

12월 19일에는 대통령 선거가 실시된다. 선거 과열과 지역감정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선 등급제’를 실시하면 어떨까? 우리가 대선에서 국민 개개인의 의견이 반영된 정확한 결과를 원하듯이 수능에서도 학생의 노력과 능력이 좀 더 정확하게 반영된 결과를 원하는 것은 매우 당연하다.

대학입시를 둘러싼 문제는 수능 등급제와 같은 미시적 접근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고등학교 졸업 후 좋은 대학으로 가는 진학 병목이 존재하는 한 어떤 형태로든 경쟁의 과열은 피할 수 없기 때문이다. 과열 경쟁의 입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궁극적으로 국제적인 경쟁력을 갖춘 특성화 대학을 많이 만들어야 한다. 대선 후보의 교육정책 공약이 대학입시에만 머물지 말아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신종호 서울대 교수·교육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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