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위안의 명성은 외국에도 자자하다. 상하이를 방문하는 외국 지도자들이 꼭 들르는 곳이다. 그 입구에 중국 공산당 최고지도자가 위위안을 칭송하는 글씨를 세워 놓은 것은 야릇한 느낌을 불러일으켰다.
‘부자의 정원’ 찬양한 장쩌민
위위안은 16세기 관리였던 반윤단(潘允端)의 개인 정원이었다. 효자로 이름났던 그가 아버지를 기쁘게 하려는 목적으로 18년에 걸쳐 만들었다고 한다. 수천 평은 족히 될 법한 넓이에 오밀조밀하게 각종 건물과 연못, 정원을 갖춰 놓은 걸 보면 조성 비용도 어마어마하게 들었을 것이다.
그는 어떤 생각을 하며 이 호사스러운 정원을 꾸몄을까. 후대에 멋진 정원 하나를 남겨 역사에 이름을 올리고픈 욕심이 있었을까. 아마도 부자이자 권력가로서 위세를 뽐내거나, 개인적 사치를 누리기 위해서였을 것이다. 하지만 그가 정원을 지어 기쁘게 해 드리고 싶었던 아버지는 정작 완공을 보지 못한 채 눈을 감았다. 그 자신도 이 정원을 만든 뒤 몇 년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났다.
한때의 큰 부자가 사적 욕망을 위해 만든 정원에 450년 뒤 사회주의 지도자 장쩌민은 ‘최고의 정원’이라는 비석을 세웠다. ‘민중을 착취해 만든 유산’이라는 계급의식을 앞세우지 않고 담담하게 ‘문화’로 받아들인 것이다.
구경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자 주변 상가들은 성시를 이루고 있었다. 기념품 가게, 전통 찻집, 식당에 스타벅스 커피숍까지 있었다. 위위안을 보기 위해 찾아 온 관광객들이 알토란 같은 수입의 원천이었다. 계급이 문화를 낳지만 그 문화는 시간이 흐르면 모두의 것이 된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집트의 피라미드에서 한국의 판소리까지 우리가 알고 있는 문화유산은 거의 부자와 권력자가 남긴 것이다. 당대 최고의 문화예술가를 동원할 능력이 그들에게 있었기 때문이다. 반면에 평등주의가 득세한 사회주의와 공산주의 시대는 이렇다 할 문화를 남기지 못했다. 문화혁명을 일으켜 오히려 문화 파괴에 앞장섰던 중국의 마오쩌둥 자신은 명나라와 청나라의 호화 궁궐이었던 쯔진청(紫禁城)에 거처를 잡고 살았다.
올해 신정아 변양균 사건에 이어 삼성비자금 사건이 터진 뒤 문화계가 크게 위축되고 있다. 문화계의 치부들이 드러나면서 문화행사에 지원을 약속했던 기업들이 주저하고 있다는 소식이다.
일부 비리에 곧바로 흔들리는 한국의 기업 메세나 정신도 너무 얄팍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가장 걱정스러운 것은 ‘문화는 일부 계층의 전유물’이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확산되지 않을까 하는 점이다. 유홍준 문화재청장은 “100년 후 현 시대를 대표할 만한 문화적 유산이 어떤 게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말한다. 예컨대 부자들이 호화 별장을 지으면 몇 세대를 거쳐 상속되는 과정에서 주인의 손을 떠나 공공의 자산이 되고 당대의 문화유산으로 남는데, 이에 대한 반감과 부정적 정서 때문에 이들이 외국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는 것이다.
문화는 죄가 없다
안타깝지만 문화는 부(富)에서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으면 안 된다. 국가가 부유해야 문화가 꽃을 피운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국민이 여유로워야 하고 그 가운데 부자들이 문화에 관심을 갖고 지원에 나서야 문화는 발전한다. 길게 보면 그 혜택은 모두에게 돌아간다. 한국 부유층은 선진국에 비해 문화에 관심이 없는 편이라서 오히려 걱정이다.
중국식 사회주의처럼 누가 만들었든 문화는 문화 그 자체로 받아들이면 된다. ‘문화의 시대’를 맞아 우리가 미워할 건 비리이지 문화가 아니다. 문화는 죄가 없다.
홍찬식 논설위원 chansik@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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