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청자들은 지난 한 달간 TV뉴스 앞머리에서 이 후보를 ‘주가조작범’으로 몰아가는 김 씨 가족의 일방적인 주장을 수없이 지켜봤다. 한 달 뒤 거짓말로 판명된 피의자 가족의 주장을 그대로 중계방송한 것이 어떤 후보에게 유리하고 어떤 후보에게 불리한지는 두 방송이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2002년 대선 때의 ‘김대업 병풍’ 보도에 이어 공영방송이 다시금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자청한 꼴이다.
12개 시민단체로 구성된 편파방송저지시민연대는 지난달 13일부터 이달 2일까지 MBC와 KBS의 저녁 메인뉴스가 내보낸 대선 보도를 분석했다. MBC가 내보낸 154회 대선 보도 중에서 무려 64%인 98회가 김 씨와 관련한 보도였다. KBS는 이보다 적기는 하지만 71회를 내보내 전체의 45%를 차지했다.
김 씨의 국내 송환을 앞둔 지난달 13일 MBC 뉴스데스크는 화면 제목에 “들어가 싸우겠다”는 김 씨의 말을 그대로 넣어 시청자에게 보여 줬다. 김 씨를 민주투사처럼 묘사한 이 뉴스는 방송위원회 산하 선거방송심의위원회의 심의 대상에 올라 ‘시정 권고’ 조치를 받았다. 지난달 27일 MBC 뉴스데스크는 10건의 대선 관련 기사 가운데 이 후보의 BBK 관련 의혹을 맨 앞에 연이어 3건을 다뤘다. 의혹을 제기하는 정봉주 대통합민주신당 의원의 말은 현장 동시 녹화로 내보낸 반면 한나라당의 반론은 자막과 기자 리포트로 간단히 처리했다.
방송위원회 심의 규정은 ‘방송은 피고인 피의자 범죄혐의자를 다룰 때는 범죄행위가 과장되거나 정당화되지 않도록 유의해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피의자가 방송을 악용할 가능성 때문에 방송이 여과해서 전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씨는 횡령 주가조작 사문서위조 혐의로 기소 중지된 상태였다. MBC와 KBS가 인터뷰해 보도한 그의 누나 에리카 김은 문서 위조와 돈세탁 등으로 미국 법원에서 범죄 사실을 인정한 뒤 변호사 자격을 자진 반납한 사람이다.
MBC는 ‘정치적 이해당사자에 대해 균형성이 유지되어야 한다’는 방송법 제6조도 제대로 지키지 않았다. 뉴스원(源)을 다룰 때 깨끗한 손과 더러운 손을 구분해야 하는 언론의 기본을 망각한 보도였다. 공영방송이 사기꾼에 맞장구를 친 셈이다.
이런 일이 ‘진보’를 앞세운 일부 신문에서도 나타난 것은 유감이다. 진실을 왜곡하고 유권자 판단을 오도(誤導)하는 일이다. 한나라당 경선과정에서부터 후보 등록 후에 이르기까지 이번 의혹 제기로 이득을 챙기려는 일부 친여세력은 BBK 보도에 신중한 태도를 취하는 언론을 오히려 공격하고 폄훼했다.
우리 대선이 한 단계 진화하기 위해서는 조작 네거티브 보도에 극도로 신중해야 한다. 1997년 대선의 DJ(김대중) 비자금, 2002년 대선의 김대업 병풍을 비롯한 이회창 3대 의혹 사건 보도에서도 방송과 일부 매체는 이번 BBK 사건과 비슷한 보도 태도를 보였다. 두 방송은 남은 대선 기간이라도 공정한 선거보도를 위해 노력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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