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다도해는 사람은 없고 빈집만 남은 무인도가 늘고 있다. 공원 지정 때만 해도 주민들은 오지 낙도가 발전할 거라고 기대했다. 그러나 1981년 9만2000명이던 인구는 지난해 2만9000명으로 68%나 줄었다. 주민 생활과 동떨어진 불합리한 정책이 지역 발전에 걸림돌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지방자치단체가 정책 개선을 끊임없이 요구하고 있지만 중앙정부는 국립공원 보전이라는 명분만을 내세우고 있다. 개발을 허용하면 국립공원 전체가 훼손될 것이라는 논리 때문에 살아보겠다는 주민들의 의욕이 꺾이고 있다.
1992년에 베네수엘라 수도 카라카스에서 열린 제4차 ‘국립공원 및 보호지역에 대한 세계위원회’는 “국립공원을 비롯한 보호지역 관리에 지역주민, 비정부기구, 지방정부가 함께 참여해야 한다”고 천명한 바 있다.
선진국은 주민의 참여를 국립공원 정책의 틀로 끌어들이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미국은 주민이 국립공원 관리에 책임감을 갖도록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있고, 캐나다는 ‘주민참여 및 주민의 권익보호’에 대한 원칙을 공원관리정책에 도입하고 있다. 1872년 세계 최초로 옐로스톤을 국립공원으로 지정할 때 미국 제18대 그랜트 대통령은 “국립공원은 모든 국민의 복리와 즐거움을 위한 공공의 공원이며 위락지”라고 선언했다.
국립공원이 지정 목적과 위상에 걸맞은 모습을 갖추려면 우선 지역주민이 잘살게 배려해야 한다. 자연을 보호하면서도 지역경제도 활성화하는 대안은 관광산업을 육성하는 것이다. 그러나 사정은 여의치 않다. 지난해 전남지역에 관광객 216만 명이 다녀갔지만 지역에 보탬이 되지 않는 당일치기 관광에 머물고 있다. 530만 명이 찾은 제주도에는 관광숙박시설이 42개가 있는 데 비해 전남의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에는 제대로 된 관광숙박시설이 없고 영세한 여관이나 민박이 대부분이다.
여기에 전체 면적의 99% 이상이 일반 건축물을 지을 수 없는 ‘자연보전 및 자연환경지구’로 묶여 있고 식당도 1km 이상 떨어져 영업하게 돼 있다. 전남 신안군 홍도는 사정이 더 심각하다. 홍도는 2007년 문화관광부로부터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됐지만 건물의 78%가 불법 건물이다. 건물이 오래돼 붕괴 위험이 있는데다 화재 우려도 높다. 시설이 열악하니 관광객들은 오지 않는다. 세계적 관광지가 규제에 묶여 그 모습을 잃어가고 있는 것이다. 홍도와 함께 ‘가고 싶은 섬’으로 선정된 완도군 청산도도 사정이 별반 다르지 않다.
이제 더는 다도해 해상국립공원을 방치해서는 안 된다. 국립공원답게 세계 어느 곳에다 내 놓아도 손색없도록 가꾸어야 한다. 지역주민이 긍지와 자부심을 가지고 공원 보호에 적극 참여할 수 있는 제도를 서둘러 마련하고 관광객이 편하게 이용할 수 있는 기반시설을 조성해야 한다.
다산 정약용의 목민심서 ‘산림’편에는 ‘다도해에 자생하던 황칠나무가 조정의 과도한 황칠 공납 요구에 견디다 못해 백성들이 악목(惡木)이라 해 죽게 했다’는 대목이 나온다. 잘못된 정책으로 황칠나무가 지역에서 사라질 뻔했듯 다도해 해상국립공원도 지역주민들로부터 외면 받는다면 위기를 맞을 수 있다. 정부는 도서 주민들이 무엇 때문에 공원구역 해제를 바라는지 지금이라도 현장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김영록 전남도 행정부지사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