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년간 한국 민주주의 성숙
1980년 서울의 봄은 짧았고 광주항쟁이라는 또 하나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남겼다. 버클리 교정에 꽃이 흐드러지게 핀 등나무 아래서, 아버지에게서 온 한국 정세 관련 편지를 열심히 읽었다. 전두환 대통령이 7년 단임제의 첫 대통령으로 취임했다가 이임식을 할 1988년, 한국 경제는 도약의 제2단계로 진입했고, 서울 올림픽 준비에 마지막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후임자인 노태우 대통령의 임기는 5년제로 변화했고, 밤 12시면 만취한 시민들이 집으로 가는 택시를 잡느라 아우성치던 시대는 옛말이 되었다. 너도 나도 자가용 소유자가 되고, 통행금지는 역사의 유물로 사라졌다. 노 대통령이 1993년 이임식을 할 무렵, 한국은 이미 명실 공히 선진국 도약의 입구에 섰다.
야당 당수의 경력을 가진 사람이 처음 대통령이 되는 기록을 가지게 된 김영삼 대통령은 성숙해진 민주적 한국의 단단한 국가력을 승계 받은 행운의 대통령이었다. 1997년 외환위기는 한국 경제의 원천적 문제를 드러내고, 국민 소득을 깎아내린 불행한 경험이었다. 그러나 한국 민족의 끈질긴 인내력과 노력을 통해 지구촌 국가들을 감동시킨 드라마가 또 한 번 연출됐다. 주부, 할머니, 젊은 어머니들이 금반지를 모으는 운동이 전 세계에 보도됐고, 한국민의 강인한 투쟁 의지는 세계적 화제였다. 김대중 대통령 취임식에는 미국 워싱턴에서만 자비로 서울행에 나선 정책 입안자와 엘리트가 50여 명이었다. 초대는 받았으나 참석하지 않은 나 자신도 TV 중계를 보며, 한국 민주화의 승리가 바로 이게 아닌가 하는 감명 속에 빠져들었다.
2003년 예상외로 당선된 노무현 대통령 취임에 관해서 지구촌 미디어는 말이 없었다. 위기를 다루는 미디어에 이미 한국은 더는 기삿거리를 제공하지 않는 국가로 승격했다. 문제점이 없는 민주국가의 대통령 선거는 아무런 흥미를 끌지 않는다는 역설이 바로 이거였다.
다시 한국은 대선을 치른다. 선거 열기 속에서 상대방 헐뜯기와 스캔들 노출, 성격과 인격 비판은 놀랄 일이 아니다. 미국, 프랑스 등의 권력 쟁탈 과정은 너 죽고 나 죽고 식의 무서운 싸움이다. 한국이 별다르게 미숙한 나라도 아니고, 이상한 나라도 아니라는 것을 만리타향에서 나는 정확히 본다. 1987년 그리고 2007년의 차이는 뽕밭이 푸른 바다가 된 것보다 더 놀랍다. 학생들이 일본 중국으로 여행하고, 대다수 국민이 여권을 소유한 나라다. 미국은 여권 소유자가 고작 23%밖에 되지 않는데! 다만, 마지막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이 있다.
5년간 후회 안 할 대통령 뽑아야
“이런 멋진 나라를 만드느라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좋은 대선 치르시고 누가 대통령이 되든, 국가의 저력이 국민에게 있음을 확신하시고 너무 걱정 마십시오. 다만 현명한 선택을 하면, 앞으로 5년 심기가 비교적 편하실 테니, 최선이 없다고 하더라도, 그들 중 조금은 머리가 좋고, 능력이 있는 분을 고르십시오. 연말 잘 보내시고 기쁜 새해를 맞으시기 바랍니다. 한국 브라보!”
오공단 미국 국방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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