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요동치는 러시아 상황을 두고 서방 평론가들은 이렇게 말하고 있다. 블라디미르 푸틴 대통령이 러시아의 모든 분야를 장악하고 조종한다는 것이다.
사실 러시아의 복잡한 사정을 아무리 잘 이해하려 애쓰는 전문가들도 “이건 너무한 것 아니냐”는 말을 할 때가 많다.
집권 여당인 통합러시아당의 압승으로 끝난 최근 총선도 그랬다. 통합러시아당 전국구 1번으로 출마한 푸틴 대통령은 의회 진출이 불투명한 군소 야당을 향해 “서구의 지원을 받은 자칼”이라고 비난했다. 이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전 세계 체스 챔피언 가리 카스파로프 씨 등 야당 인사들이 경찰에 연행됐다. 야당이 대응할 틈도 주지 않았다.
푸틴 대통령이 자본주의를 갓 도입한 러시아 시장에서 외국 상인의 영업을 제한하는 법안에 서명하거나 “스포츠 팀에서 외국 선수를 줄여야 한다”고 말할 때는 영락없는 옹졸한 국수주의자다.
글로벌 스탠더드에서 보면 그의 사고와 행동에 후한 점수를 주기가 어렵다. 서방 정치 비평가들은 주지사 직선제를 임명제로 바꾼 그를 ‘사이비 헌법주의자’라고 혹평하기도 한다.
그의 후계자 지명도 민주화를 막는 행위로 비칠 수밖에 없다. 국정수행 지지도 80%를 등에 업고 자기 마음에 드는 인사를 내보내 선택을 강요하고 있기 때문이다.
서구의 시각에선 그가 인권보호 무시, 의회민주주의 후퇴, 법치주의 지연, 관료주의 존속에 앞장 선 퇴행적 지도자로 남을 만한 모든 조건을 갖추고 있다.
그럼에도 러시아 국민 사이에서 푸틴 대통령이 인기 상승 곡선을 그리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 원천이 서방과 대립 각을 세운 결과도 아니고, 언론 통제와 야당 탄압의 대가도 아니라는 점은 러시아와 서방 전문가 모두 동의한다.
러시아 민주화 과정을 연구한 영국 켄트대의 리처드 새쿼 교수는 최근 ‘푸틴의 러시아’라는 책에서 “보수 노선을 추구한 것이 푸틴 리더십의 비결”이라고 분석했다.
실제로 푸틴 체제는 안정과 질서에 과도하게 집착했다. 일례로 유럽 록 뮤직 가수들은 아직도 크렘린 앞 야외무대에 서지 못하고 있다. 우크라이나에서 록 뮤직이 오렌지 혁명을 전염시켰다는 보고가 나온 뒤부터 일어난 일이다.
무질서 불안 불확실성을 야기할 수 있는 개혁과 질서 안정을 가져오는 반(反)개혁 중 양자택일 상황에 몰리면 푸틴 대통령은 대부분 후자를 선택해 왔다.
푸틴 대통령은 보리스 옐친 전 대통령 이후 범죄와 부패로 들끓던 사회를 안정시켰다. 이와 함께 보수 노선을 걸으며 위기 관리형 지도자로 확실하게 부상했다. 이런 점이 국민 신뢰의 기반이 됐으며, 임기 말에도 인기가 식지 않는 이유 중 하나다.
체제 전환 뒤 10년간 혼란을 겪은 러시아에서 푸틴 대통령이 고집한 안정의 가치는 러시아에 진출한 서방 기업인들이 새로 평가하고 있다. 유럽 기업인들은 푸틴 대통령이 내년 5월 퇴임 이후 총리가 될 것이라는 소식을 반기고 있다.
또 푸틴 대통령은 경제 분야에서 실적추구형 지도자로 이미지를 굳히고 있다. 그의 집권 8년 동안 러시아 국민총생산은 6배 이상 늘었다.
서방으로부터 비난을 받지만 러시아에선 인기를 누리는 푸틴 대통령의 리더십을 한마디로 말하긴 어렵다. 하지만 그가 국민이 중시하는 가치 중 한 가지만 잘 지켜도 국내에서 신망 받는 지도자가 될 수 있다는 점을 보여 준 것은 분명하다.
정위용 모스크바 특파원 viyonz@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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