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 닥친 일이다. 놀라고 있을 수만은 없다. 청정 바다 위에 속수무책으로 1만500kL의 기름이 쏟아졌다는 사실을 일단 받아들인 후 우리가 할 일? 그건 기름을 닦아 내는 일뿐이다. 닦아 내야 한다. 모래를, 갯벌을, 갯바위를, 방파제를, 아니 파도를, 바다 그 자체를! 흡착포로 닦고 걸레로 닦고 그게 모자라면 옷으로라도 닦아 내야 한다. 닦지 않으면 어쩔 것인가. 인간이 자연 앞에서 할 일은 그것밖에 없다.
명백히 우리 잘못으로 바다와 갯벌과 모래와 바위와 물새와 조가비를 망가뜨렸으니 속죄하면서 그들에게 노여움을 풀어 달라고 비는 수밖에 없다. 잘못이 누구에게 있는지 따지는 것은 나중 문제다. 당장은 우리 모두의 죄라고 생각하고 엎드려서 저 기름을 닦아 내자. 누구도 그 죄에서 사면될 수 없다.
전 국민이 그렇게 바다 위에 엎드린다면 재앙은 극복할 수 있다. 어쩌면 그게 편 갈라 서로를 경멸하거나 비난하기에 바빴던 우리를 한 덩어리로 묶을 수 있다. 우린 모두 별 수 없이, 파도 위로 기름이 몰려오는 모습에 본능적인 두려움을 느끼는 인간일 뿐이다. 우리가 우쭐대며 만들어 놓은 문명은 실은 언제 어떻게 이런 재앙을 우리에게 돌려줄지 모른다. 그걸 이기는 유일한 방법은 서로 돕고 의지하는 것뿐임을 우린 체온으로, 몸짓으로, 눈빛으로 확인해야 한다.
다행히 자원봉사자가 줄을 이어 태안으로, 태안으로 몰려간다는 소식이다. 벌써 연인원 6만 명이 기름띠를 걷어 내는 데 참여했다. 몇 해 전 시프린스호 기름을 걷어 내느라 기름 걷는 데 노하우(?)가 생겼다는 여수의 할머니도 멀미 나는 차를 타고 태안까지 오셨다. 당신 집 부엌 냄비와 숟가락을 닦듯 해변의 자갈돌을 눈물로 닦아 낸다. 생일을 맞은 스무 살 청년도, 결혼기념일을 맞은 중년 부부도 왔다. 고무장화를 갈아 신고 고무장갑을 끼고 흡착포를 들고 악취를 마다않고 시꺼먼 바닷물 속으로 걸어 들어간다. 그들 눈에 슬쩍 고인 눈물이 우리의 희망이고 미래다.
10년 전 일본 후쿠이(福井) 현에도 지금 태안과 비슷한 일이 일어났다. 난방용 기름을 싣고 캄차카로 가던 배가 뒤집혀 6200kL(우린 1만500kL)의 기름이 바다 위로 쏟아 부어졌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일본 전역에서 30만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었고 그들이 기름을 석 달 만에 모조리 닦아 냈다. 우린? 언제나 일본보다 더 뜨겁게 위기를 돌파했다. 하루 이틀에 될 일은 아니다. 하루 2만 명씩 1년이 걸리는 작업이라고 추산한단다. 걱정 없다. 차분하게 계획을 세워 태안에 가자. 가서 엎드려 기름을 닦아 내자.
‘하늘이 무심치 않다’는 말은 수백 번 들었다. 우리 모두 그렇게 기름을 닦는 데 다걸기한다면 하늘이 무심할 수 없을 거다. 만리포 천리포 학암포 십리포 구름포…. 다시 불러보는 저 서해 포구의 이름은 어찌 이리 아름다운가. 그걸 되살려 내는 일이 2007년 연말 한국에 사는 우리의 숙제다. 생업을 망친 사람들에 대한 속죄이고 의무이고 사랑이다. 새 대통령으로 누가 적임일지는 기름을 닦으면서 생각해 보자. 우리 눈이 한결 밝아질는지 모른다.
김서령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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