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엇보다 전통시대 제왕의 권위주의적인 모습에서 벗어나 정조의 인간적 고뇌에 초점을 맞추고 백성의 편에서 백성의 삶을 걱정하며 보살피는 참군주가 되려는 정조의 모습이 호소력을 발휘해서가 아닌가 싶다. 대선의 계절에 우리에게 필요한 지도자의 이상형을 찾고 싶은 국민적 바람이 시청률로 나타났다고 보인다.
전통시대에 왕은 성학을 해야 했다. 성학은 한마디로 말하면 제왕학이다. 율곡 이이의 ‘성학집요’가 대표적 성학 교과서였다. 왕을 성인으로 만들려는 내용이다. 후계자 교육이 서연이라면 왕이 되고 나서도 성학은 계속돼 경연을 했다. 내 배 부르고 등 따듯하면 남의 배도 부르고 남의 등도 따듯한 줄 아는 게 보통사람의 속성이다. 성인만이 보통사람의 한계를 벗어날 수 있다. 왕실에서 유복하게 자란 왕을 성인의 경지로 올리기 위해 성학이 요구됐다.
국민기대 빵만으론 충족안돼
조선시대 유일한 여성 유학자로 평가되는 임윤지당(1721∼1793)은 중국 송나라 때의 왕안석을 신랄하게 비판했다. 정치의 근본인 도덕을 소홀히 하고 지엽적인 공리(功利)만을 추구하고 아첨하는 무리만 등용했으므로 나라가 쇠약해져서 결국 휘종과 흠종이 금나라로 잡혀가고 고종이 남천했으니 모든 책임은 왕안석에게 있다는 주장이다.
이른바 왕안석의 신법이 나라를 망쳤다는 말인데 북송 신종 때의 신법당과 구법당의 치열한 노선투쟁은 천년의 시공을 뛰어넘어 시사하는 바가 많다. 오늘날의 대선 판도가 이와 유사하게 돌아가는 것 같아서 그렇다.
이명박 후보를 지지하는 서울 강남의 중산층 중에는 그의 능력을 높이 사는 경우가 많다. 그가 많은 재산을 모은 능력으로 국부를 늘려 국민의 호주머니도 두둑하게 채워 줄 수 있으리라는 기대감이다. 그가 설령 거짓말을 하더라도 어쩔 수 없지 않느냐, 그럼 아니라고 잡아떼야지 이제 와서 시인하고 손들고 나갈 수는 없지 않느냐는 게 그들의 논리이다. 그야말로 공리적인 시각이다.
대통합민주신당 김근태 선대위 공동위원장은 이명박 후보의 부정과 부도덕성이 백일하에 드러나는데도 지지율이 떨어지지 않으니 국민이 노망난 게 아니냐고 푸념했다. 지금까지 도덕성만 내세운 현 정부의 시행착오와 무능력, 정권 말기의 도덕적 해이에 대한 국민의 심판임을 그라고 모를 리 없건만 국민이 도덕불감증에 걸렸다고 한탄했다. 그야말로 도덕적인 인식이다.
정치가의 도덕성은 동서고금에 모두 요구된 진리이다. 미국에서도 대통령의 거짓말이 치명적임을 우리 모두 보았다. 그럼에도 국민이 도덕적인 문제에 눈감으려 한다면 이는 국민의 생활이 그만큼 절박해졌음을 의미한다.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될성부른 지도자에게 한 표를
사람은 빵 없이는 살 수 없다. 그런데 빵만으로는 살 수 없는 게 또한 사람이다. 빵은 필요조건이지만 충분조건이 아니라는 말이다. 그래서 빵이 해결되면 다음엔 양심이라든가 자존심이라든가 도덕성, 그리고 의리와 명분을 찾는다. 더구나 오랜 유교적 전통이 강하게 남아 있어서 지도자의 자질에 대해 엄격한 기준을 요구하고 싶어 하는 국민 정서로 볼 때 빵이 해결된다 해도 문제는 남는다.
성학이 없는 시대에 검증이 안 된 지도자를 뽑아야 하는 국민은 괴롭다. 후계자 교육이 없는 민주주의 시대에 완전한 지도자를 희망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지 모르겠다. 풀뿌리 민주주의 시대에는 국민이 주인이니 차라리 대통령이 되고 난 다음에도 이 시대의 성학을 공부할 자세가 되어 있는 지도자를 뽑아 성학을 요구하는 게 어떨까 싶다. 성학이 그리운 계절이다.
정옥자 서울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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