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등급제를 비롯해 외국어고·자립형사립고 규제, 사립학교법 개정 등 그동안 논란이 많았던 정책 담당자들은 정치적 상황이 바뀌면 어떻게 변명해야 하지요?”
요즘 교육인적자원부는 유난히 뒤숭숭한 분위기다. 각계 전문가들은 차기 정부의 최우선 과제로 교육개혁을 꼽고 있어 최대 화두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정부가 바뀔 때마다 교육부 폐지, 다른 부처와 통폐합하거나 대입업무에서 손을 떼고 장기정책 수립 기능만 맡아야 한다는 등의 각종 아이디어가 쏟아지곤 했지만 이번은 좀 다른 것 같다.
1, 2점 차로 등급이 바뀌고 몇 점을 받아야 1등급인지조차 확인할 수 없는 ‘깜깜이’ 수능 등급제는 교육정책 실패의 대표적 사례로 꼽히고 있어 어떤 식으로든 바뀔 공산이 크다.
사실 참여정부 4년 10개월은 교육부에도 고통의 세월이었을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은 ‘교육대통령’을 자임했지만 교육부총리를 5명이나 갈아치우는 바람에 백년소계(百年小計)라는 비판 속에 교육부는 그 ‘코드’에 맞추느라 정신이 없었다.
‘장관을 뺑뺑이 돌리고 핫바지로 만드는 곳이 교육부’라고 일갈하며 입각한 윤덕홍 초대 부총리는 교육행정정보통신망(NEIS) 도입 등을 놓고 임기 9개월 내내 전교조에 휘둘리다 물러났다.
교육부 장관을 지낸 안병영 전 부총리를 다시 불러들였지만 청와대와 열린우리당은 수능 등급제 도입에 고분고분하지 않자 수능 휴대전화 부정사건을 핑계 삼아 경질했다.
안 전 부총리는 “5등급제로 하자거나 1등급을 7%로 하자는 것을 장관직을 걸고 4%로 겨우 막아 냈다”며 “말로 못할 고초를 겪었지만 만약 7%로 했으면 아마 민란이 났을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안 부총리는 바람막이 역할이라도 했다지만 경제부총리 출신의 김진표 부총리는 청와대 코드에 맞춰 사학법 개정과 외고 죽이기에 앞장서는 등 ‘오버’했다가 외고들이 들고 일어나자 물러났다. 김신일 현 부총리도 학자적 소신을 접고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해 우유부단한 장관이란 평을 듣고 있다.
집권세력의 위세를 등에 업은 전교조가 교육부를 압박하며 교육정책을 좌지우지하고 진보적인 시민·교육단체들이 교육부의 각종 위원회에 약방의 감초처럼 끼어들어 훈수를 두는 바람에 교육부도 이들의 눈치를 볼 정도였다.
그렇다고 교육부가 남 탓만 할 수 있을까. 정치권이 코드 정책을 주문할 때 나름대로 융통성을 부려 ‘선방(善防)’했노라고 항변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외고 정책 변경, 내신 반영비율 파동, 등급제 논란 등이 이슈가 됐을 때 평소의 소신을 펴거나 제 목소리를 냈다는 관료를 찾아보기 힘들다.
한 간부는 “상황이 바뀐다고 한입으로 두말을 할 수는 없지 않느냐”며 “인적 쇄신 운운하는 소리가 나오면 결국 공무원만 죽을 맛”이라고 우려했다.
새 정부가 들어서면 많은 정책이 쏟아질 것이고 또 다른 코드에 맞춰 시각 교정을 해야 할지도 모른다. 다음 정권도 교육의 정치적 이용을 삼가야 하지만 교육관료들도 5년마다 변명을 내놓지 않으려면 ‘자기중심’을 잡았으면 한다.
이인철 교육생활부장 inchul@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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