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세계의 앞줄에 앉아 있다는 자부심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 힘이 정보화라고 한다. 정보화는 암기의 노력과 필요성을 지속적으로 줄여 준다. 그러나 이 땅의 교과서, 수업, 시험은 책을 펴서 읽으면 되는 것을 대학시험 볼 때까지 굳이 외우고 있으라고 강요한다. 그 가치는 수백 년 전 조선시대의 것이다. 도도한 인류의 역사는 증언한다. 가장 중요한 지적 능력은 암기력이 아니고 창조적 사고라는 것을. 세상의 그 어떤 배움과 깨달음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상상력이며 그것이 없는 개인과 사회의 미래는 암울하기만 하다는 것을.
우리 사회의 가치는 분명 전도돼 있다. 시험은 기량을 가늠하는 도구이거늘 우리 사회에서는 넘어야 할 장애물이고 극복해야 할 목표로 바뀐다. 언어는 목적이 아니고 수단이거늘 영어시험은 자격이 아니고 능력의 위상을 갖고 있다. 세계적인 업적을 남긴 이에게 수여하는 결과물이 노벨상이라는데 한국에서는 국가자존심의 표상이라도 되는 것처럼 연말이 호들갑스럽다.
대학 입학 다음에는 취업에 필요한 자격증 시험으로 뛰어든다. 평균에 가까운 사회인이 형성되는 것이다. 그러나 평균에 가까운 사회구성원은 차고 넘친다. 사회는 점점 더 평균적이지 않은 구성원을 요구할 수밖에 없다. 그것은 한국이 아니고 세계가 경쟁 대상인 구도에서 더 그렇다. 결국 잉여 구성원들은 새로운 생존 방식을 찾아야 한다. 한국에서 그 모습은 중년 이후의 개인사업으로 나타난다. 경쟁력이 없는 피자, 치킨, 삼겹살 등 프랜차이즈 사업의 업종은 계속 바뀌고 크고 화려하되 값싼 간판은 하루가 다르게 도시를 어지럽힌다. 한국의 오늘은 어지럽다. 대통령 선거에 즈음해 한국의 미래는 더 암울하게 보이기 시작했다. 대통령은 우리가 선망하는 스타가 돼야 한다. 그러나 누가 거짓말을 덜 하는지, 누가 욕지거리를 덜 하는지, 누가 덜 탐욕스러운지를 보고 피해 가며 대통령을 뽑아야 하는 이 나라의 오늘은 분명 불행하다.
이 어지러운 세상의 위안은 사회가 강요하는 평균적 생활방식을 거부하고 수영에서, 스케이팅에서 세상의 중심에 선 10대들이다. 미국의 피겨스케이터 미셸 콴은 세계 최고의 기량을 자랑했지만 결국 올림픽 금메달을 따지 못하고 은퇴했다. 능력과 일치하지 않는 결과에 대한 소감을 묻는 은퇴 기자회견에서의 질문에 미셸 콴은 담담하게 답했다. “스포츠는 그런 것입니다.” 이 달관의 대답은 그녀가 스포츠 선수를 넘어 스타가 되기에 충분함을 보여 주었다. 세상의 기준을 만드는 기량을 갖고 있으면 세계적 선수다. 여기에 자신이 보는 세상의 모습을 갖고 있으면 스타가 된다. 그것이 교양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우리가 기대했으나 갖지 못하는 대통령 모습의 대안은 눈을 돌려 10대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우리의 10대들이 스타가 되었으면 좋겠다. 별이 많다면 혼탁한 세상의 밤하늘 아래서 더 많은 이가 길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서현 한양대 교수·건축학부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