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방형남]공동정부

  • 입력 2007년 12월 19일 03시 03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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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선 후보가 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대단한 영예다. 국민에게 내가 대통령이 되면 뭘 하겠다고 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그러나 영예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유권자들은 “고치겠다” “바꾸겠다” “만들겠다” “이루겠다”로 끝나는 후보들의 말을 흘려듣지 않는다. 대통령이 되겠다는 큰 뜻을 품고 있고 오랫동안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약속일 것이라고 믿어서다. 그래서 후보가 하는 약속은 공약(公約)이다.

▷기대와는 달리 현실에선 공약이 종종 공약(空約)이 되곤 한다. 지킬 수도 없고 지킬 의지도 없으면서도 일단 던져 놓고 보는 빈 약속이 많기 때문이다. 대개는 “선거란 원래 그런 것 아니냐”며 넘어간다. 선거가 끝나면 “무리한 공약은 솔직히 고백하고 할 수 있는 것만 하라”고 사면(赦免)과 충고를 동시에 해 주는 논객도 많다. 그러나 이것은 분명한 속임수다. 이번 선거 막판에 쏟아져 나온 ‘공동정부’가 대표적인 사례다.

▷대통합민주신당의 정동영 후보는 그제 민주당 이인제 후보와 창조한국당 문국현 후보에게 ‘반부패 공동정부’를 제안했다. 어제는 무소속 이회창 후보도 박근혜 한나라당 전 대표에게 “공동정부를 구성하자”고 제의했다. 코미디가 따로 없다. 공동정부라면 국정의 기본 틀을 바꾸겠다는 얘기나 다름없는데 이처럼 중요한 제안을 투표 하루 이틀 전에 할 수 있는가. 100m 달리기를 하다가 결승선 앞에서 “개인전을 단체전으로 바꿉시다”라고 제안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1997년 대선에서 김대중 김종필 후보가 DJP 공동정부를 내걸고 연대해 승리한 전례가 있기는 있다. 프랑스에서도 1981년 사회당과 공산당이 연대해 정권을 잡았다. 그러나 어느 쪽도 투표 하루 이틀 전에 공동정부를 들고 나오지는 않았다. DJP만 해도 몇 달동안 고심한 척이라도 했다. 이번처럼 국민을 흔들지는 않았다. 더욱이 정 후보가 제시한 공동정부 대상엔 ‘차떼기 수구 부패 세력’이라고 입만 열면 비난하던 당사자도 포함됐다. 국민을 바보로 알지 않는 한 상상할 수도 없는 일이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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