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임규진]냉장고와 대통령

  • 입력 2007년 12월 25일 19시 39분


‘불량 냉장고는 반품된다. 무능한 대통령은 지지율이 폭락한다. 이것이 시장원리다.’

필자는 본보 2003년 9월 1일자에 이런 요지의 칼럼을 썼다. 제 기능을 못하는 상품은 시장에서 반드시 퇴출된다고 했다. 대통령도 공공서비스를 제대로 생산하지 못하고 비판 언론 압살에나 나서면 유권자(정치소비자)의 응징을 받는다고 덧붙였다. 취임 초기부터 엉뚱한 방향으로 흘러간 노무현 정부에 대한 경고였다.

유감스럽게도 노무현 정부는 5년 동안 질 나쁜 공공서비스를 바가지요금(세금)으로 국민에게 강매(强賣)했다. 세금은 폭증하고 성장률은 밑바닥으로 추락한 게 그 증거다. 모든 국민이 피해를 봤다. 민심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

“3년 연속 흉작이 계속되는데도(저성장이 이어지는데) 세금 올리기에 바쁘다. ‘세금방망이’로 집값 땅값 안정, 빈부격차 해소 등을 다 하겠다고 한다. 세금부담 증가에 재정운용 비효율이 겹쳐 민간부문의 활력이 위축돼도 ‘작은 정부보다 효율적 정부가 좋다’고 강변한다.”(본보 2005년 6월 8일자)

부동산시장에선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실종되고 세금폭탄만 난무했다. 현 정부는 부처를 총동원하여 ‘부동산 상위 2% 대 하위 98%’라는 극단적 계급투쟁론까지 선동했다. 집값과 땅값은 5년 내내 계속 올랐다. 집 없는 서민의 설움은 더욱 깊어졌다.

2006년 5월 11일자 칼럼에서 현 정부가 부동산에 대해 자해(自害)수법과 협박정책을 쓴다고 지적했다. 건설경기를 침체시켜 서민 일자리 수십만 개를 없앤 게 자해의 증거였다. “종합부동산세는 2009년, 2010년이 돼야 제대로 된 고지서를 받게 된다”는 김병준 당시 대통령정책실장의 주장을 협박정책으로 꼽았다.

공공서비스도 제대로 제공하지 못하며 민간의 발목을 잡은 반(反)기업 정책은 설상가상(雪上加霜)이었다. 성장의 주역인 기업을 ‘억압’과 ‘통제’의 대상으로 취급한 시대착오적 좌파(左派) 코드 탓이다. 세계 모든 나라가 친(親)기업 정책으로 성장에 전력할 때 현 정부는 기업을 각종 규제로 묶어 나라 경제를 어렵게 만들었다.

2005년 8월 말 “기업 투자와 호랑이 짝짓기는 똑같다”고 말했던 기업인 A 씨가 생각난다. 그는 “호랑이는 조용한 곳에서 은은한 달빛을 받으며 새로운 생명을 만든다. 그런데 수도권을 짝짓기 금지구역으로 정하고 덩치 큰 호랑이는 아예 짝짓기를 못하게 한다. 게다가 하루라도 조용한 날이 없으니 어떤 호랑이가 짝짓기를 하겠나. 요즘 한국 기업의 투자 현실이 이렇다”고 토로했다. 이 내용은 2005년 9월 5일자 칼럼에 소개했다. 짝짓기를 못한 결과는 청년실업이다.

참다못한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은 2006년 12월 1일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중국 일본 등 주변국 경제가 다 좋아. 왜 우리 경제만 이렇게 나쁜가. 도대체 누가 잘못하는 거야”라며 현 정부의 실정(失政)을 질타했다. 이어 박 명예회장은 “국민이 힘차게 일할 수 있도록 사기를 높여 주시오”라고 당부했다.

19일 국민은 이명박 한나라당 후보를 새 대통령으로 뽑았다. 이 후보의 압도적 승리에는 현 정부에 대한 국민의 분노(憤怒)가 있었다. 부실 공공서비스에 대한 정치시장의 평가였다.

새 정부는 부디 세계 최고 품질의 공공서비스를 최저가격에 공급해 주길 바란다.

임규진 경제부 차장 mhjh22@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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