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아침 한가한 시간에 동네 목욕탕을 찾았습니다. 언제나 탕 안에 앉으면 처음 만난 사람과도 쉽게 이야기를 나누게 됩니다. 새로 나온 건강식품이 사실은 몸에 해롭다더라 하는 이야기부터 살 빼는 데는 어떤 게 최고라는 생활 정보까지, 정말 다양한 소재가 등장합니다. 할 말이 별로 없는 저는 주로 듣는 처지지만 동네 아주머니들의 설전은 항상 흥미진진합니다. 지난주 화제는 최근 우리 동네에 앞 다퉈 문을 연 대형 할인매장들이었습니다.
A: 아휴, 요즘 광고 전단지가 어찌나 많이 들어오는지 버릴 때마다 귀찮아요.
B: 하나같이 싸다고 엄청나게 광고를 해 대는데 믿을 수가 있나!
A: 요 앞의 H 매장은 배추 값이 아주 싸다면서요?
C: ‘파격 세일’이라고 전단지에 광고했지요? 근데 막상 가 보니까 아니더라고요. 크기도 영 작고….
B: 광고가 다 그렇지 뭐!
D: 그래도 아무렴 요 앞 슈퍼마켓보다야 물건도 좋고 싸겠지요. 명색이 대형 매장인데….
C: 천만의 말씀! 괜히 겉만 번지르르하지 실속도 없어요.
D: 거기보다 길 건너 E 매장이 훨씬 나아요. 다른 것들도 훨씬 싸더라고요.
B: 그럼 뭘 해요. 한꺼번에 여러 개씩 묶어 놓았는데. 많이 쓰는 집이나 갈까 원!
C: 게다가 배달도 안 해 주니 무거워서 어떻게 들고 와요! 틀렸지!
F: 그리고 여러 개 묶어 놓아서 쌀 것 같지요? 근데 그게 그렇지 않더라니까. 꼭 확인해야 해요. 한 개에 100원이고, 열 개에 1000원이야!
B: 아니 그나저나, 요 앞 슈퍼마켓은 어떻게 장사하려나? 문 닫아야 하는 거 아니야?
C: 무슨 소리예요. 나는 여전히 거기가 낫던데! 밥 하다가 휙 달려가서 사올 수 있지, 배달도 해 주지!
‘아, 그랬구나.’ 평소 여기저기 드나들지 못하던 저로서는 이렇듯 구매 장소가 아닌 곳에서도 활발히 오가는 실속 정보에 귀가 솔깃합니다. 언제나 그렇듯이 그 속에 담겨 있는 소비자들의 지혜에 혀를 내두르면서요. 아무리 미끼 광고를 해도 이를 정확히 읽는 소비자, 어수룩한 듯해도 판매자의 전략을 쉽게 파악하는 소비자, 많은 대안 속에서 자신의 구매 욕구를 확실하게 충족시키려는 소비자.
비록 모래알처럼 흩어진 소비자들이 자신에게 구매하도록 강요된 것을 구매할 수밖에 없는 사회에 살고 있다지만, 이렇듯 소비자들이 서로 정보를 공유하며 바람직한 방향으로 시장을 끌고 갈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봅니다.
여정성 서울대 생활과학대 소비자학과 교수
구독
구독
구독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