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공종식]‘인재 블랙홀’ 미국의 힘

  • 입력 2007년 12월 27일 02시 5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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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국내 어느 대학이든 의예과가 이공계에서 최고 인기를 끌고 있지만 기자가 대학에 입학했던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공과대의 인기가 꽤 높았다.

특히 전자공학과는 이공계 인재들이 모이는 집합소였다. 학력고사 성적(당시에는 대학수학능력시험 대신 학력고사 점수로 대학에 진학했다)이 상위권 대학의 의예과에 충분히 합격하고도 남을 만큼 높아도 전자공학과에 진학한 학생이 많았다.

최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하는 친구와 우연히 연락이 닿아 통화를 하다 그곳에서 일하는 서울대 전자공학과 출신자가 의외로 많다는 얘기를 듣고 깜짝 놀랐다. 어떤 학번은 수가 제법 돼서 별도의 동기모임을 할 수 있을 정도라고 했다.

그때 들었던 생각은 “미국이라는 나라는 참 좋겠다. 이렇게 뛰어난 인재가 많이 모여들어 기술개발을 주도하고 있으니…”라는 부러움이었다. 사실 실리콘밸리는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 과학인재들이 다 모이는 곳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중국 칭화(淸華)대, 인도의 인도공과대 등을 졸업한 과학인재들이 가장 가고 싶어 하는 장소도 실리콘밸리다. 실리콘밸리 일대에서 발행되는 신문 새너제이머큐리에 따르면 지난해 실리콘밸리에서 새롭게 문을 연 회사의 창업자 가운데 인도 출신이 25.8%를 차지했고 이어 일본(13.6%) 중국(13.6%) 대만(10.6%) 순이었다고 한다.

아시아 지역 인재들만 미국을 선호하는 것이 아니다. 선진국인 유럽국가 출신들의 미국 선호 현상도 매우 높다.

세계 최고급 오토바이를 생산하는 할리데이비슨을 취재하기 위해 최근 캔자스시티를 방문했을 때에는 이런 얘기를 들었다.

할리데이비슨이 독일의 한 회사와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독일인들이 미국에 와서 근무하기 시작했다. 그 후 조인트벤처가 중단되자 수십 명의 독일 기술자가 독일로 돌아가는 대신 미국에 정착하기로 결정해 이를 본 미국인 직원들이 놀랐다는 것이었다.

전 세계 인재들이 왜 미국을 유독 선호하는 것일까. 이유야 여러 가지이겠지만 한 독일 출신 엔지니어는 얼마 전 기자와 만났을 때 이렇게 설명했다.

“독일에 있을 때에는 물론 미혼인 상태이기도 했지만 세금과 연금 납부 등으로 소득의 60%를 떼였다. 여유라는 게 없었다. 그런데 미국에선 이제 집도 두 채가 있고, 경제적으로 훨씬 여유가 있다. 미국은 재능이 있고, 열심히 일하면 보상을 해 주는 시스템이 잘 정착돼 있다.”

이처럼 전 세계 인재들이 미국에 몰려들고 있기 때문에 미국이 많은 분야에서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음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일부에서는 중국의 최근 부상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패권 경쟁에서 중국이 미국을 절대 넘어설 수 없는 이유로 유능한 인재가 끊임없이 미국으로 몰려들고 있는 점을 꼽기도 한다.

아시아에서는 싱가포르가 해외 인재 유치에 적극적이다.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 위해 학력, 직업, 경력 등을 점수로 매겨 일정한 조건만 충족되면 영주권을 바로 내주기도 한다. 싱가포르는 이 같은 적극적인 인재 유치 정책으로 상당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한다.

한국은 우수한 해외 인재를 유치하기는커녕 한국 사회가 배출한 유능한 인재들마저 오히려 해외에 빼앗기고 있다. 문제는 글로벌 환경에서 인재들이 국경을 넘어 움직인다는 점이다. 유럽의 경우 상당수의 프랑스 출신 인재가 영국 런던에서 일하는 것이 대표적인 사례다.

글로벌 인재를 상대로 ‘애국심’에 호소하는 것은 한계가 있다. 한국도 외국의 우수한 인재를 어떻게 해야 유치할 수 있을지 깊이 고민해야 할 것 같다.

공종식 뉴욕 특파원 k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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