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선 미국의 동맹국으로서 이라크전쟁에 적극 참여했다가 내년 봄부터 현재 주둔병력 5000명을 2500명으로 감축하기로 결정한 영국을 보자. 일반적으로 정부가 동맹관계를 고려하여 해외 파병 또는 파병부대의 주둔 연장을 결정해도 의회는 국민 여론을 감안해 비판적인 목소리를 내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영국 하원의 국방위원회는 3일 제출한 보고서에서 정부가 애초의 파병 목적을 달성하지 못한 채 이라크 동남부 지역에 무법천지의 폭력과 혼란만 남겨놓은 채 주둔지에서 철수하려 한다고 일침을 가했다. 외교안보 정책을 평가하는 데 국내 정치적 요인에 흔들리지 않고 대의에 충실하려는 영국 하원의 모습을 우리도 참고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미국에서는 6월에만 해도 이라크 내 미군의 임무 수행에 대한 여론조사에서 긍정적인 평가가 3분의 1에 불과했으나 지난달 말에는 2분의 1로 증가했다.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올해 초 신(新)이라크 전략을 추진한 이후 미군 사상자 수가 감소하며 이라크 치안 상황이 개선되는 등 성과를 거두고 있기 때문이다.
영국군 철수 지역 무법천지로
더욱 고무적인 현상은 개전 초기만 하더라도 테러 집단인 알카에다와 연대해서 미군에 저항하던 수니파 주민이 최근에는 알카에다에 등을 돌리고 미군과 협력하면서 치안 상황이 획기적으로 개선되고 있다는 점이다. 고향을 떠났던 이라크인이 귀국하려는 움직임도 보이고 있다.
이라크와 이라크 국민에게는 내년이 매우 중요하다. 현재의 긍정적인 발전 방향을 지속하느냐 못하느냐가 내년에 결정된다. 이라크에서 시장터에 모인 군중을 대상으로 폭탄테러를 자행하며 수백 명의 사상자를 초래하는 극단주의 테러집단은 숭고한 이슬람 전사가 아니라 범죄자에 불과하다.
이들은 발전소 정유소 송전선 송유관 등 사회기간시설을 파괴하고 사회 불안을 조성해 이라크 정부의 무능을 증명하는 동시에 미군에 대한 반감을 고조시키려 한다. 하수정화시설의 파괴로 하수 및 오물이 지상에 흘러나오면서 위생에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고 이라크 전체 주민의 약 70%가 식수 부족으로 고통을 받는다.
이런 상황에서 이라크 주둔 다국적군을 철수시키면 최근에 영국군이 철수한 바스라 주(州)의 무법천지가 재현돼 이라크의 비극은 더욱 악화된다. 그뿐만 아니라 중동 전체가 혼란에 빠져들고 유가 상승으로 세계 경제가 큰 타격을 받을 가능성이 농후하다. 사태가 이런데도 이라크의 평화를 위해서 철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이것이야말로 현실을 무시하고 외면하는 공허한 말이다.
한국군 주둔 지역인 아르빌 주의 쿠르드 주민 중 84%가 자이툰 부대의 주둔 연장을 바란다는 점도 우리 국회는 깊이 생각해야 한다. 1950년의 6·25전쟁으로 발생한 국가 존망의 위기를 극복하고 우리가 세계 경제력 12위의 국가로 도약한 것도 오직 국제사회의 도움으로 가능했다.
이제는 스스로 평화를 지켜 나가지 못하는 민족을 우리가 도와줌으로써 국제사회에 진 빚을 갚아야 할 때가 됐다. 평화를 지키기 위해 전쟁터에서 목숨을 바치는 것은 군인으로서 영광스러운 일이기도 하다.
현지 주민 84% 파병연장 희망
자이툰 부대는 이라크에서 지난 3년여 동안 현지의 평화 재건사업을 지원하며 다국적군 민사작전의 모델로 평가받을 만큼 큰 활약을 했다. 도널드 럼즈펠드 전 미국 국방장관이 미군 지휘관에게 한국의 자이툰 부대를 벤치마킹하라고 지시했을 정도다.
내년은 북한 핵 등 한반도를 둘러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느 때보다 긴밀한 한미 공조가 필요한 시점이다. 국가와 국민을 위한 진정한 리더십이 필요한 때다. 당리당략과 대선 결과가 아니라 국익과 국제적 책무를 감안해 국회가 결단하기 바란다.
김충배 한국국방연구원 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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