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 접전에서 속기로 일관하던 이세돌 9단이 갑자기 손길을 멈추고 생각하기 시작했다.
검토실 기사들은 “설마, 손을 빼려는 건 아니겠지. 패가 나면 백이 무척 괴로운데…”라고 우려했다. ‘설마’는 사실로 드러났다. 이 9단이 백 120으로 최대한 버티고 나선 것.
프로기사들이 형세분석을 할 때 낙관파와 비관파가 있다. 이 9단은 비관파에 속한다. 확정되지 않은 자신의 세력이나 집을 박하게 평가한다. 그는 자신이 비관파인 이유에 대해 끝내기가 약하기 때문이라고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는 “내 끝내기 실력은 이창호 9단이나 박영훈 9단만 못하다. 끝내기에서 당할 것을 생각하면 내 집을 박하게 볼 수밖에 없다. 중반에 차이를 벌려놓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강수를 두게 된다”고 말했다.
이 9단은 이 무렵 형세를 비관하고 있었다. 백의 중앙 진출이 사실상 막히고 좌하 귀에서 활용을 당해 흐름이 나쁘다고 본 것이다. 백 120은 좌하에서 벌어놓고 중앙은 흑의 처분에 맡기자는 뜻이었다.
그러나 이 9단은 좀 더 참았어야 했다. 참고도 백 1로 패를 방지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흑 6까지 백이 약간 불리하긴 해도 아직 앞날이 창창한 바둑이었다.
패가 나자 당장 백이 괴로워졌다. 백은 패의 대가로 우상 귀 일부를 잡았지만 중앙 넉 점을 빵때려 낸 흑의 두터움에 비하면 새발의 피다. 형세가 완전히 흑에게 기울었다. 129…123.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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