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둑]제51기 국수전…정신이 맑아지다

  • 입력 2008년 1월 4일 03시 01분


흑 149로 다가오자 우변 백은 빈사 상태에 빠졌다. 이 무렵 이세돌 9단은 반(半)포기 상태였다. 광막한 흑의 어둠 속에 갇혀버린 느낌이다. 몸부림칠수록 가위 눌린 것처럼 더욱 조여 오는 힘에 저항할 기력도 점점 잃어가고 있었다. 이 9단은 지난 수순을 파노라마처럼 되돌아봤다. 중앙 패와 우상귀 패, 두 번의 패싸움에서 흑에게 힘이 실린 펀치를 맞았다. 두 번 다 하지 말았어야 할 패싸움이었다.

‘머리가 맑지 않고 판단이 제대로 서지 않아. 혼미한 상태에서 바둑을 둔 것 같은 느낌이야. 삼성화재배와 LG배 세계대회 결승에 올라간 뒤 마음이 느슨해진 탓일까.’

이 9단은 속기로 두면서도 거듭 자책하고 있었다. 이젠 우변 백이 아무 피해 없이 살아도 진다. 윤준상 국수가 흑 157로 어깨를 짚는 순간 이 9단은 백 말이 살지 못하겠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이후 수순은 매우 간단하다. 흑 161까지 백의 궁도를 줄이자 백은 한눈에 봐도 두 집 내고 살기는 어렵다.

‘두 수를 연거푸 둬야 살겠네.’ 이 9단은 쓴웃음을 지었다.

흑 163이나 165로는 참고도처럼 밖에서 포위해도 백이 살 길이 없다. 그러나 윤 국수는 그 정도로는 성이 안찬다는 듯 흑 165까지 백의 속살로 파고든다. 백은 한 집도 없다.

‘너무 후벼 파는 거 아냐.’ 이 9단은 순간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어차피 질 바둑, 백 돌은 살린 뒤 돌을 던지자.’

목표가 명확해지자 흐릿하던 정신도 맑아지는 듯하다. 이 9단은 자세를 바로 하고 수읽기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해설=김승준 9단·글=서정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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