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차 교육과정에서 학생들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신장한다는 명분으로 교과목 부담을 경감하고 다양한 선택권을 주는 방향으로 개정됐지만 과학교육에서 수많은 문제점을 드러냈다. 가중되는 대학 입시의 압박 아래 학생들은 어려운 물리를 피하고 점수를 따기 쉬운 과목만을 선호했고, 과학 교과서는 점차 ‘수능시험 준비서’로 전락했다.
어렵고 복잡한 첨단내용 제외
현재 고등학교에서는 쉽고 재미있는 내용만을 중심으로 과학을 가르치고 있다. 이에 따라 학생들이 배우는 과학 내용이 대폭 줄고 상대적으로 복잡한 첨단과학의 내용이 빠졌다. 이제 고등학교 교과서 어디에서도 현대 물리학의 정수인 아인슈타인의 상대성이론과 화학의 기초인 주기율표를 찾아볼 수 없다. 하지만 상대성이론도 고교 과정에서 수식이 없이 소개할 수 있고 주기율표도 빌 브라이슨의 ‘포도송이’와 같이 그 중요성을 흥미롭게 가르쳐 줄 수 있다. 변화가 가속되는 과학기술시대에 우리의 과학 교과서는 ‘현재’와 ‘미래’가 아닌 한참 뒤떨어진 ‘과거’에 치중하며 학생들에게서 유리되고 있는 셈이다. 이에 비해 영국물리학회가 오랜 기간 전문가의 도움으로 제작한 고등학교용 물리 교과서는 생활 속의 물리뿐 아니라 최첨단 물리학 연구의 결과까지 담고 있다.
이번 수능 물리II 오답 논란에서 제기됐던 ‘다원자 분자 이상기체’에 대해 여러 교과서에서 다루고 있는 내용 중 틀린 부분도 있었다. 충북대 정진수 교수의 최근 연구에 따르면 현재 고등학교 1학년 물리 교과서 중 두 종류의 분석 결과 잘못된 내용이 33개나 나왔다. 현재 시중에 나와 있는 과학 교과서를 모두 다 뒤져보면 얼마나 많은 과학적 오류가 발견될지 자못 걱정이 된다. 고교 1학년의 경우 과학의 기초개념을 정확하게 하고 향후 심화학습을 준비하는 매우 중요한 단계이다. 과학적인 오류가 많이 포함된 부실 교과서로 물리를 배운 학생들이 오개념을 가지고 자칫 과학의 길을 잘못 들어서게 되지 않을까 염려된다.
이 과학 교과서 모두가 교육과정평가원과 교육인적자원부의 검정을 아무 문제 없이 받았다는 것이 놀랍다. 현재 경직화된 교과과정과 검정 과정 속에서 교과서가 일단 검정을 받으면 오류의 수정과 첨단 과학의 추가가 어려운 것이 현실이다. 이번 수능 물리II 문제와 관련된 논란에서 오류 발생 및 이의 제기 때 전문학회에 자문해 검토받는 과정이 제대로 되지 않은 것이 큰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이를 교훈 삼아 중등과학교육의 선진화를 위해서는 과학 교과 조정과 과학 교과서의 검정 과정에서 조기에 전문학회에 자문해 검토를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체계적으로 구축해야 한다.
전문학회 자문 시스템 갖춰야
최근 우리 학생들의 수학 과학 실력이 경쟁국에 비해 급속하게 떨어지고 있어 우리나라 과학기술의 미래 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졌다. 이러한 사실은 소수정예에 기초한 수학·과학올림피아드의 놀라운 성과를 접해 온 독자들의 인식과는 크게 괴리되지만 과학교육 현장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예견됐다. 우리 학생들의 과학 실력이 세계 정상에 서게 하려면 학생들이 과학을 핵심 교과로서 배우고 제대로 된 과학 교과서로 그 진가를 맛볼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우리 학생들, 더 나아가 국민의 과학적 소양이 더욱 새롭고 확실하게 업그레이드되면 수능 오답 논란과 유사한 사태의 재발도 피할 수 있을 것이다.
김승환 포스텍 연구처장 한국물리학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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