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가들은 “연륜이 깊어 뭔가 알 만하면 색이 간결해지고 화면이 단순해진다”고 말한다. 달리 말해 젊어서 고민이 많거나 하고 싶은 게 많을수록 작품이 복잡하고 모호해진다는 것이다. 대가의 작품과 덜 익은 작가의 작품을 비교해 보면 새삼 와 닿는 말이다. 운보 김기창 화백도 늘 “어린아이처럼 그려라”라고 말했다.
글쓰기도 다를 바 없다. 경험에 따르면 마음이나 생각이 걸러지지 않고, 주장하고 싶은 게 많을수록 글은 키가 고장난 배처럼 맴돌곤 했다. 요즘도 칼럼을 쓸 때마다 며칠씩 머리를 싸매지만 초기 시절에는 두 문장을 제대로 못 쓴 적도 많다.
소설가 김훈 씨는 “(기자 시절) 글쓰기를 잔혹하게 훈련받았다”고 했다. 칼날 같은 그의 문체를 보면 고개가 끄덕여진다. 간결하고 명료한 글쓰기를 하려면 자기 생각을 살덩어리 베어 내듯 잘라내는 고통을 견뎌야 한다는 말로 기자는 새기고 있다.
말하기는 글쓰기보다 더 간결 명료해야 한다. 말하는 사람의 메시지는 듣는 사람의 관점에서 해석되기 때문이다. 특히 말은 비용이 들지 않는 데다 나오자마자 돌이킬 수 없어 ‘복잡성’이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한다. 말이 많을수록 더 많은 말을 해야 한다. 웅변이 힘을 쓰지 못하면 침묵이 설득한다는 말도 있다.
마케팅에서도 ‘간결 명료’는 기본이다. 할인마트에서 소비자의 시선이 제품에 머무는 시간은 1초가 안 된다. 제품 디자인에서 최고의 아름다움은 단순함에 있다는 말은 그 찰나의 ‘소통’을 위한 것이다. 460개 기업을 7년간 조사한 책 ‘단순함(Simplicity)이 최고의 경쟁력이다’에서도 “단순함은 정보 홍수와 무한 선택의 세계에서 핵심을 가늠케 하는 경쟁력”이라고 말한다.
말하기와 글쓰기, 작품이나 디자인 등은 모두 ‘소통’을 위한 표현이다. 문제는 그것이 개인의 욕심, 사색의 빈곤이나 모순 때문에 장황하고 거칠고 불명확하게 되는 데 있다. 실제로 우리 일상에서 모호한 말과 글이 얼마나 많이 오가는지 보라. 그 절반만 줄여도 소통은 훨씬 더 분명해지고 품위도 갖출 수 있을 것이다.
그러기에 평소 자신의 앎을 간명하게 말하는 이들을 눈여겨보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박지성 선수가 “영어도 축구 실력이다”고 말한 것처럼 세계화 시대 영어의 경쟁력을 웅변하는 말이 더 있을지. 이어령 교수의 교양 강좌에서 “설명할 수 있는 것을 설명하는 게 과학, 설명할 수 없는 것을 설명하는 게 예술, 설명해선 안 되는 것을 설명하는 게 종교”라는 말을 들었을 때, 기자는 무릎을 쳤다.
이 같은 문장을 듣거나 접하면 머리가 명쾌해지고 가슴이 후련해진다. 그 덕분에 안개 속에 있는 것 같은 사안을 정리해 소통을 자신 있고 품위 있게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독자 여러분들도 올해 하루 하나씩 ‘간결 명료’한 말을 만들거나 모으시는 건 어떨지….
허 엽 문화부장 heo@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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