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국민에게 버림 받았나
육상 릴레이 경기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바통 터치다. 제아무리 뛰어난 선수들이 팀을 이룬다 해도 바통 잇기에 실패하면 우승하기 어렵다. 국정(國政)의 인수인계도 마찬가지다. 매끄럽게 이뤄져야 계속 잘 달릴 수 있다. 대부분 의례적 인사로 채워진 노 대통령과 이 당선인의 첫 회동은 2%가 아니라 98%가 부족했다.
이 당선인은 노 대통령이 그런 말을 하게 된 연유를 알아야 한다. 기세 좋게 청와대에 입성한 사람이 5년 만에 자신 없는 모습으로 변해 과거를 그리워하게 된 곡절을 파악해야 한다. 다른 자리에서였지만 노 대통령은 “신세가 참담하다”고까지 했다.
5년 전 노 대통령에 대한 국민의 기대는 현재 이 당선인에 대한 기대보다 훨씬 컸다. 2003년 1월 여론조사(문화일보, TNS)에서 응답자의 89.1%가 새 대통령이 ‘잘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취임 직전인 2월 조사(동아일보, 코리아리서치)에서도 84.3%가 잘할 것이라고 대답했다. 이 당선인은 5년간 꿈쩍 않던 대불산업단지의 전봇대를 말 한마디로 5시간 만에 뽑게 할 정도로 막강한 권력을 누리고 있지만 그가 잘할 것이라고 기대하는 응답자는 75.2∼82.6%(리얼미터 1월 조사) 수준이다.
국민만 뜨거웠던 게 아니다. 노 대통령은 당선인 시절 갈등과 분열의 시대를 끝내고 원칙과 신뢰의 정치를 시작하겠다고 다짐했다. “국민이 대통령입니다”라는 슬로건도 내걸었다. 그런 그가 국민에게 버림 받은 이유를 후임자는 육성(肉聲)으로 들어야 한다. 실패를 반복하지 않으려면 반드시 있어야 할 인수인계다.
노 대통령과 이 당선인은 대통령만 아는 비밀도 주고받아야 한다. 대통령은 건국 이후 불과 8명만 체험한 특별한 자리다. 보통 국민은 물론 측근 인사라 해도 알 수 없는 대통령만의 경험과 교훈이 많다. 예를 들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과의 정상회담 같은 것들이다. 인수인계에는 공개되지 않은 국정의 비밀까지 포함되어야 한다. 남북 정상회담의 전모를 알아야 김 위원장과 북한을 제대로 대할 수 있다. 연초부터 북한이 합의된 남북 접촉을 일방적으로 무산시킨 배경도 헤아릴 수 있다.
국정 최고 책임자이기는 하지만 대통령에게도 한계는 있을 것이다. 사심(私心) 없이 국가와 국민을 위해 최선을 다했지만 이루지 못한 일이 있다면 그 한계와 장벽이 무엇이었는지를 후임자가 알게 해야 한다. 인사 실패 등 시행착오를 겪은 경험도 공유할 필요가 있다.
얼굴 맞댄 인수인계 필요하다
대통령과 당선인이 예의를 차리면서 덕담이나 나누는 형식으로는 성공적인 인수인계가 될 수 없다. 노 대통령은 창피를 무릅쓰고 실패 경험까지 알려주겠다는 자세로, 이 당선인은 전임자의 성공과 실패에서 교훈을 얻어 국민이 부여한 임무를 완수하겠다는 각오로 매달려야 한다. 대한민국은 대통령직을 주고받는 두 사람만의 나라가 아니다. 국가를 위해 자존심을 버릴 정도의 희생은 해야 한다.
전례에 따르면 노 대통령과 이 당선인은 부부 동반으로 한 번 더 만날 가능성이 있다. 그런 기회가 온다면 주변을 물리친 뒤 얼굴을 맞대고 밤을 새워서라도 충분한 대화를 나누게 되기를 기대한다. 아직 한 달이 남았으니 시간도 넉넉하다.
방형남 논설위원 hnbha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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