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서/육정수]사관생도와 대통령의 악수

  • 입력 2008년 1월 24일 03시 05분


“대통령께서 입장하고 계십니다. 모두 일어서 주십시오.”

잠시 후 대통령 내외가 단상 가운데에 도착하면 곧바로 지휘관 생도의 ‘대통령께 대한 경례’ 구령이 우렁차게 울려 퍼진다. 대통령이 거수경례로 답하면서 군악 연주와 함께 예포 21발이 발사된다. 매년 3월 이렇게 시작되는 사관학교 졸업 및 임관식은 생도들이 장교 정모(正帽)를 하늘로 일제히 던져 올리며 환희의 함성을 지르는 것으로 끝난다.

사관학교 졸업식엔 국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참석하는 것이 관례였다. 초대 이승만 대통령도 그랬고, 박정희 대통령은 1964년부터 1979년까지 16년 동안 한 해도 거르지 않았다. 특히 대통령과의 악수는 대한민국 장교로서의 긍지와 ‘특별한 추억’을 만들어 준다. 이는 국가 안보를 책임지겠다는 국민과의 약속이기도 하다.

1959년 육사 15기로 임관한 민병돈 예비역 중장은 이승만 대통령과의 악수를 지금도 생생히 기억한다. 당시 84세이던 이 대통령은 임관하는 생도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성공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민 장군은 노(老)대통령의 나지막했던 이 한마디가 평생 뇌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군대생활을 하는 동안 어떤 임무를 맡으면 그분의 말이 생각나 항상 성공을 위해 최선을 다했어요. ‘할아버지 대통령’의 손은 무척 따뜻했습니다.”

그로부터 꼭 30년 후 육사 교장이 된 민 장군은 1989년 육사 졸업식 때 생도들과 악수를 하며 일일이 “성공해”라고 말했다. 이 때문에 바로 옆자리 노태우 대통령 앞에서 생도들의 줄이 밀리는 바람에 청와대의 지적을 받기도 했다.

그는 1년 선배인 14기 졸업식 때도 기억한다. 이 대통령은 축사를 마친 뒤 동석한 제임스 밴플리트 주한 미8군사령관을 향해 영어로 “우리의 성공이 당신들의 성공이고, 당신들의 성공이 우리의 성공입니다”라며 한미동맹을 강조했다고 한다.

더글러스 맥아더 장군이 1951년 미국 상하 양원 합동회의에서 행한 고별 연설에서 “노병(老兵)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다”라고 한 말은 유명하다. 그러나 이 말은 그의 독창적인 것이 아니다. 웨스트포인트 육사 생도 시절 자랑스럽게 불렀던 군가의 후렴을 인용한 것일 뿐이다. 군인생활의 막을 내리는 순간 52년 전의 육군 소위 임관식이 떠올랐던 것이다.

이 말에는 군문(軍門)에 처음 들어서던 시절 청년 장교 맥아더의 포부와 긍지, 사명감, 애국심, 명예감 등이 농축돼 있다. 군인으로서 일생을 바친 그의 마음의 고향은 역시 웨스트포인트 캠퍼스였던 것이다. 아마도 맥아더는 1, 2차 세계대전과 6·25전쟁 참전 중에도 자신의 군인정신을 길러준 웨스트포인트를 한시도 잊지 않았을 것이다. 6·25전쟁 당시 해리 트루먼 대통령과 충돌하면서까지 중국 폭격을 당당히 주장할 수 있었던 힘도 웨스트포인트에서 나왔을 것 같다.

이명박 차기 정부는 올해부터 대통령이 육해공 3군 사관학교 졸업식에 모두 참석하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2006년 시작된 윤번제 참석을 바꿔 최고통수권자로서의 상징성을 다시 잇겠다는 뜻이다. 당연한 일이다. 사관학교 졸업식은 일선 초급장교가 되어 떠나는 생도뿐만 아니라 일반 국민에게도 안보의 중요성을 일깨우는 엄숙한 행사다.

육정수 논설위원 sooy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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