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디로 국내 정치 지향 및 공작정보 타성 탓에 고도로 요구되는 정보 전문성이 결여되고 정보 전문가의 윤리성이 황폐화된 증거다. 흔들리는 정보기관을 추스르는 작업은 21세기 정보·세계화 시대에 적극 대처하는 정보전문화시스템 혁신에 달려 있다.
정보전문화시스템 혁신은 국가 정보기관의 정보업무를 재검토하는 재고량조사(intelligence inventory)에서 시작해야 한다. 모든 국가 정보기관 업무를 조사해 유사한 업무를 통합하거나 중복 부분은 정리해 고유 정보기관에 돌려주고 정보기관 조직 자체도 정예화해야 한다.
우리 정보기관은 1948년 정부 수립 이래 대북 군사정보 수집을 위한 육군정보국을 시작으로 정보사령부 통신정보부대 국군기무사령부 국방정보본부 등이 주류를 이뤄 왔다. 동시에 경찰 검찰 행정자치부 외교통상부 등 정부 기관이 분야별 정보수집 활동을 했다. 1960년대에 창설한 중앙정보부에서 이어진 국정원이 국내외 정보전문 종합조정기관으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은 변화하는 시장경제에 대처하고자 생산 재고량 조사, 기업경쟁력 분석, 조직 개편을 순발력 있게 한다. 그런데 국가 목표와 세계 환경의 급속한 변화에도 정부 수립 이후 60년이 지난 지금까지 국가 정보기관의 총체적 임무와 업무량 재고 조사, 그에 따른 조직 정비는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다.
미국은 9·11 이후 테러 대비, 과학기술력 향상, 지구환경 개선 등에 초점을 맞춰 중앙정보국은 해외 정보에 주력하고 그 대신 15개 정보기관을 조정해 대통령과 의회에 정보를 보고하는 국가정보부를 신설해 운용하고 있다. 그리고 영국은 정보운영위원회, 독일은 정보수석, 이탈리아는 정보사무처, 프랑스는 정보위원회를 각기 총리, 대통령실에서 운영하고 있다.
일본은 우리나라의 국정원 격인 내각조사실에서 첩보위성을 2기나 운용하면서 총리관저 지하의 정보집약센터를 통해 세계 상황과 한반도 정세를 실시간으로 총리에게 보고하고 있다.
이처럼 선진국은 국가정보업무 재고량 파악, 정보 전문성 향상, 대통령·총리 정보지원시스템 확립으로 국가 정보력을 최대로 가동하고 있다.
국정원장 교체로 해외 정보 지향의 정예 국정원을 만든다는 발상은 국가정보혁신 작업에서 근시안적 정책이다. 오히려 거시적 전략 차원에서 정권인수 기간에 인수위 멤버, 국가정보기관 실무자, 민간 정보 전문가로 구성된 정보혁신팀을 만들어 국가 정보기관 정보업무 재고 조사와 조직 정예화, 국정원의 해외정보기관으로의 정체성 확립, 대통령 정보지원시스템을 구축하는 정보혁신시스템을 확고히 해야 할 것이다. 밀실에서 인수위 위원 몇 명이 진행하는 정보혁신 작업은 부정적 악영향만 줄 가능성이 많다.
건국 이래 최초의 국가정보시스템 혁신 작업을 신임 대통령을 필두로 정권 인수 기간에 확실히 마무리하기를 정보 전문가와 국민은 기대하고 있다.
최평길 연세대 명예교수 대통령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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