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남창희]한미동맹비전, 역사 다시 쓸 각오로

  • 입력 2008년 1월 25일 03시 00분


노무현 정부는 지난 5년간 대미 관계에서 불필요한 오해와 불신을 야기함으로써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보는 사람들처럼 국민을 불안하게 했다. 대통령직인수위원회가 한미동맹의 신뢰 회복을 강조하는 것에 국민이 안도하는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단순히 상징적이고 수사적으로 한미동맹의 중요성을 주장하는 것으로 문제가 해결되기에는 혼돈의 상흔이 너무 깊다. 더욱이 9·11테러 이후 대테러전쟁과 미군의 군사변환 과정을 거치면서 한미동맹에 대한 미국의 기대치는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급변하는 국제안보환경을 직시하고 면밀한 계산과 과학적인 기법을 활용해 미래 한미동맹의 로드맵을 정밀하게 작성해야 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미일동맹 사례 타산지석 삼아야

많은 안보연구자가 공통적으로 제안한 대로 새 행정부는 출범 뒤 첫 한미 정상회담에서 미래 한미동맹 비전을 의제로 검토할 가능성이 높다. 지난 5년간 미래한미동맹정책구상회의(FOTA), 안보정책구상회의(SPI), 전략대화(SCAP) 등이 가동됐지만 남북공조 우선 논리에 밀려 명확한 동맹의 비전을 제시하지는 못했다. 당선인이 한미 관계의 강화와 남북 관계의 발전이 서로 모순되지 않는다는 인식을 보인 것은 한미동맹 비전 구상의 첫 단추를 잘 끼우는 데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지도자의 일관되고 분명한 정책 지침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참모진의 전문성이다. 낡은 이념에 경도돼 세계화 시대에 부적응증을 노출했던 비전문가 참모들과 달리 현 인수위에 참여한 외교안보 참모들이 국제적 식견이 있으며 실용적 철학을 갖고 있는 점도 다행스럽다. 문제는 미래 한미동맹의 비전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개념적 방향성을 제시하는 데 그쳐서는 안 된다는 점이다. 미일 양국은 1990년대 신방위협력지침으로 작전 수준의 협력을 확대하기 시작했으며 최근에는 공통의 전략목표 합의, 양국군의 임무와 역할의 설정, 전력구조와 배치구조의 조정 및 운용 태세의 통합성 강화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미일동맹 강화 노력에서 보이는 논리적이고 체계적인 전환 과정을 타산지석으로 삼아 우리도 구체적인 액션 플랜을 담은 동맹의 청사진을 준비해야 할 것이다.

한미동맹 발전 청사진에 담아야 할 내용은 시간적으로는 중장기 목표와 단기 목표로 나눌 수 있고 지리적으로는 세계, 동북아, 남북한 수준으로 분류할 수 있다. 국가 대전략 차원에서의 중장기 한미동맹의 목표를 과거처럼 한반도 전쟁 억지 수단에 머무르게 할 것인가 아니면 지역 안보로 역할을 확대할 것인가 하는 것은 지속적인 모의정책실험을 필요로 한다. 미국은 세계 수준에서의 대테러전과 대량살상무기 비확산 노력에 대한 한국군의 참여를 희망하고 있다. 우리의 국제안보 공헌모델의 설정에 있어서 세 가지 지리적 수준의 안보과제 간의 비중을 적절히 안배하는 혜안과 통찰력도 요구된다.

FTA비준-전작권 해결부터

발등에 떨어진 시급한 과제로서는 역시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의 조기 국회 비준이며 이에 못지않게 중요한 동맹관리 정책 현안도 산적해 있다. 2012년으로 합의한 전시작전통제권의 전환 준비에 대한 정부의 방침을 명확히 하는 것과 북한 급변사태 시 한미 양국 군대 간 역할 분담의 지침 정립도 미룰 수 없는 주요 과제이다. 방위비 분담 구조 재조정, 평택 미군기지 사업의 비용 염출 방안은 물론이고 대량살상무기 확산방지구상(PSI) 참여 문제와 미사일방어 체제 도입 문제에 대한 생각을 정립하는 것도 시급한 과제다. 그리고 한미동맹의 강화를 예민하게 주시하고 있는 중국의 경계심을 완화할 완충장치의 구비 역시 새 정부 외교안보 참모진이 지혜를 발휘해야 할 숙제다. 아무쪼록 국민의 불안감을 잠재울 믿음직스러운 새 정부의 미래 한미동맹 청사진을 기대해 본다.

남창희 인하대 교수·정치외교학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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