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무조사를 당하는 기업들은 초죽음이 된다. ‘두들겨 맞을’ 세금 규모를 점쳐 보려고 조사요원 눈치를 살핀다. 추징액 ‘딜(거래)’도 이뤄진다. 2년 전 세무조사에 시달린 한 중소기업 대표는 “탈루를 밝혀내지 못한 조사요원들이 다른 건을 찾는다며 질질 끄는 바람에 더 애를 먹었다”면서 “결국 ‘국세청 측 목표액’에 얼추 맞춰 주는 선에서 타협했다”고 불평했다. 조사요원들이 식사 대접 제의를 거절하는 것은 과거와 달라졌지만 주먹구구식 조사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기업은 국세청의 ‘변덕’이 두렵다. 과잉 세무조사, 세수(稅收) 목표를 채우려는 연말의 할당식 징수, 기장(記帳)을 권장하면서도 장부보다 업종 평균치를 더 믿는 세무서 중심 일처리 등이다. 이런 횡포를 당하고 나면 생산과 영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할 마음이 싹 가신다고 한다. 기업들로선 금융, 노무(勞務) 못지않게 세무 리스크도 크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이명박 차기 정부의 ‘친(親)기업’ 행보에 맞춰 세무조사를 줄이겠다고 연초에 발표했지만 기업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한 청장은 과세 여부에 관한 기업의 질의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답변을 해 주는 ‘사전답변제’를 도입하겠다고 24일 밝혔다. 김대중 정부가 언론사에 대한 ‘보복성’ 세무조사 때 써먹은 수법을 이제야 버리겠다는 얘기다. 당시 국세청은 일부 언론사가 세무서의 회신 내용대로 회계 처리한 것에도 탈루 혐의를 적용했다가 대부분 소송에서 패했다. 탈세 기업을 봐주는 게 아니라 국세청이 정권 하수인 역할을 거부하고 본업을 공명정대하게 하면 그게 친기업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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