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횡설수설/홍권희]親기업 국세청

  • 입력 2008년 1월 26일 02시 49분


국세청 조사요원들이 대기업에 들이닥쳐 장부들을 쓸어가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조사를 벌인다. 조사 사유도 ‘탈루 혐의’라고만 돼 있다. 회사 직원들은 일손을 놓고 떤다. 세무조사 중 가장 무섭다는 ‘특별(심층)세무조사’를 당하는 기업 풍경이다. ‘바다이야기’처럼 사회적 논란이 되거나 탈세 제보가 접수된 경우, 오랜 기간 분석한 결과 ‘탈세 혐의가 짙고 고의적 악질적’인 경우가 대상이 된다지만 과거엔 정치적 응징 목적의 조사도 적지 않았다.

▷세무조사를 당하는 기업들은 초죽음이 된다. ‘두들겨 맞을’ 세금 규모를 점쳐 보려고 조사요원 눈치를 살핀다. 추징액 ‘딜(거래)’도 이뤄진다. 2년 전 세무조사에 시달린 한 중소기업 대표는 “탈루를 밝혀내지 못한 조사요원들이 다른 건을 찾는다며 질질 끄는 바람에 더 애를 먹었다”면서 “결국 ‘국세청 측 목표액’에 얼추 맞춰 주는 선에서 타협했다”고 불평했다. 조사요원들이 식사 대접 제의를 거절하는 것은 과거와 달라졌지만 주먹구구식 조사는 여전하다는 것이다.

▷기업은 국세청의 ‘변덕’이 두렵다. 과잉 세무조사, 세수(稅收) 목표를 채우려는 연말의 할당식 징수, 기장(記帳)을 권장하면서도 장부보다 업종 평균치를 더 믿는 세무서 중심 일처리 등이다. 이런 횡포를 당하고 나면 생산과 영업 현장에서 열심히 일할 마음이 싹 가신다고 한다. 기업들로선 금융, 노무(勞務) 못지않게 세무 리스크도 크다. 한상률 국세청장은 이명박 차기 정부의 ‘친(親)기업’ 행보에 맞춰 세무조사를 줄이겠다고 연초에 발표했지만 기업들은 실감하지 못하는 눈치다.

▷한 청장은 과세 여부에 관한 기업의 질의에 법적 구속력이 있는 답변을 해 주는 ‘사전답변제’를 도입하겠다고 24일 밝혔다. 김대중 정부가 언론사에 대한 ‘보복성’ 세무조사 때 써먹은 수법을 이제야 버리겠다는 얘기다. 당시 국세청은 일부 언론사가 세무서의 회신 내용대로 회계 처리한 것에도 탈루 혐의를 적용했다가 대부분 소송에서 패했다. 탈세 기업을 봐주는 게 아니라 국세청이 정권 하수인 역할을 거부하고 본업을 공명정대하게 하면 그게 친기업이다.

홍권희 논설위원 konihong@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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