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기심에 뉴욕필이 평양에서 연주할 예정인 ‘파리의 미국인’, ‘신세계에서’ 등의 연주 음반을 찾아 들어봤다. 역시 세계적인 오케스트라답게 깊은 예술혼을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북한에서 직접 살아본 기자의 경험에 비춰볼 때 북한 주민들이 과연 ‘문화적 충격’을 받을지는 의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을 정치적 도구로 삼는 북한엔 뉴욕필보다 규모가 더 큰 교향악단이 있고, 이들의 클래식 연주도 수준급이기 때문이다.
설령 뉴욕필이 ‘천상의 선율’을 들려준다 해도 공연장 밖에 있는 대부분의 북한 주민들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일이다. 북한이 주민들에게 뉴욕필이 연주하는 미국 국가를 방영할 가능성도 거의 없어 보인다.
한국과 외국의 언론이 북한의 개방에 대한 의미를 부여한 이벤트는 이전에도 많았다.
지난해 한국에서 방영된 첫 남북합작드라마 ‘사육신’의 경우도 그렇다. 남쪽에서는 남북관계 진전에 대한 기대를 걸었지만 북한에서는 당초 남측 제작진이 방영 시기로 공언했던 지난해 11월이 이미 지난 지금까지도 방영되지 않고 있다. 남쪽에서도 이 드라마가 통일언론상과 KBS연기대상 특별상을 수상했지만 정작 시청률은 바닥권이었다.
2005년 가수 조용필의 평양 공연도 마찬가지였다. 북한은 이를 통해 돈과 장비를 챙기고 폐쇄적 이미지를 일부 희석하는 효과도 거뒀지만 북의 실상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주민들의 궁핍은 그대로다.
평양에선 앞으로도 여러 이벤트가 열릴 것이다. 이제 평양이란 ‘쇼윈도’에서 누구를 위해 이런 쇼를 해야 하는지 진지하게 고민해 보자. 주최 측이 거창한 의미를 갖다 붙여도 결국 우리들만의 자화자찬이고, 자기만족은 아니었을까.
쇼윈도에 대해 백과사전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 구매욕을 북돋움으로써 점포 내로 손님을 유도하는 것이 목적이다. 때로는 대담하게 실험적인 공간연출을 시도함으로써 기업의 이미지를 부각시키는 경우도 있다”고 설명한다.
이제는 북한에 “쇼윈도가 아무리 그럴듯해도 정작 내부가 엉망이면 그 점포는 망한다”는 점을 깨닫게 해야 할 듯하다. 그럴 때가 됐다.
주성하 국제부 zsh7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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