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랏일엔 ‘레임덕’ 있을수 없다
힘을 잃어가는 정권, 권력의 뒷자락으로 물러가는 정치인들의 뒤뚱거리는 불안정한 모습이 안쓰럽지만, 역설적으로 레임덕이라는 정치적 수사가 낯설지 않게 된 것은 우리나라 민주정치가 그만큼 발전했다는 증거이기도 하다. 평화적 정권교체가 불가능했던 수십 년간의 헌정사에서 벗어나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 그리고 이명박 정부를 출범시킨 국민의 힘이 있었기에 정권교체를 전제로 한 레임덕 현상을 논할 수 있게 됐다. 쿠데타와 혁명에 의한 정치권력의 단절 속에서 레임덕이라는 정치적 수사는 존재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동시에 비정상적인 절름발이 오리를 그대로 방치할 수는 없다. 권력누수를 최소화하면서 안정적으로 정권을 이양하고, 순조롭게 정부를 인수하기 위해서는 정치행위자들의 더욱 책임 있는 자세가 필요하다. 특히 격변의 정권교체기에 중심을 잡고, 국정의 연속성을 확보하려는 고위직 공무원의 뚝심이 절실하다.
선출직인 대통령과 국회의원들도 임기 말 책무를 다해야 하지만, 임명직인 정무직 고위 공무원들은 신정부 출범 전까지 임무를 성실히 수행해야 한다. 노무현 정부와 자신이 속한 부처가 추진했던 정책의 기조가 하루아침에 바뀌고, 그간의 성과가 묻혀버리는 상황에서 일할 의욕을 잃을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상황일수록 권력누수를 담아낼 최후의 보루는 행정부처라는 사실을 직시해야 한다. 임기 말 정치권력의 누수는 어쩔 수 없다 해도 정치권력의 공백을 막고, 정책의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행정부처와 그 수장들이 올곧게 역할을 다해야 한다.
위기에 처했을 때 인물의 됨됨이를 알 수 있다던가. 정치권과 거리를 두면서 꼿꼿하게 맡은 임무를 다하고 있는 장관, 자신의 거취보다는 행정부처의 현안을 제대로 마무리하려는 장관을 보면 마음이 든든하다. 한편 행정부처 수장들이 부처의 일은 나 몰라라 하고, 자신의 정치적 행보만을 챙기는 모습은 볼썽사납다. 그렇지 않아도 신정부의 행정조직 개편안으로 뒤숭숭한 마당에 부처의 일은 제쳐두고 4월 총선을 겨냥해 이리저리 뛰어다니는 장관들의 행태는 부처 구성원들에 대한 예의도 아니고, 국민의 공복으로서의 자세는 더더구나 아니다.
총선 겨냥한 행보 국민에 실망줘
한 달 후면 5년 임기의 이명박 정부가 출범한다. 5년에 비해 한 달의 기간이 짧아 보이지만 결코 그렇지 않다. 한 달을 어떻게 마무리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5년간의 정책 방향이 결정된다. 정부 수립 이후 60년간 고위 행정 관료들에 대한 국민의 평가는 크게 둘로 나뉜다. 높은 행정 능력으로 경제성장을 주도했다는 긍정적 평가와 정치권력의 시녀로서 제 갈 길을 추스르지 못한 수동적 자세에 대한 부정적 평가다.
행정부처 고위직의 경험을 정치권 진입의 발판이나 생활의 방편으로 삼으려는 마음을 잠시 접어두면 어떨까. 한 달을 꿋꿋한 마음으로 마무리하고 그간의 행정 경험과 업적에 대한 평가를 조용히 기다리다 보면 국민은 그들을 또 원하게 될지 모른다. 더 큰일을 부탁하지 않을까.
이정희 한국외국어대 교수 정치외교학
구독 61
구독
구독 806
댓글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