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현주라는 브랜드를 보고 미래에셋에 돈을 맡긴 투자자들은 펄쩍 뛰겠지만 관료들 역시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반발할 것이다. 지시와 통제의 대상으로 대했던 ‘장사꾼’이 금융 사령탑에 오르는 시나리오는 관료들에게 상상하기조차 끔찍한 악몽일 것이다. 주식투자와 금융행정은 근본적으로 다르며, 관(官)이 할 일과 민(民)의 역할을 구분해야 한다는 논리는 나름대로 설득력이 있다. 박현주 사단이 잘나가는 현직을 버리고 온갖 질시와 험구, 견제가 난무하는 공직을 맡을 가능성도 적다. 금융시장이 한 치 앞을 내다보기 힘들 만큼 불안한 지금 상황에선 국내 펀드시장 점유율 1위 회사의 최고경영자(CEO) 역할에 충실하는 편이 더 큰 애국이 될 수도 있다.
당사자들에 대한 결례를 무릅쓰고 실현 가능성도 희박한 공상(空想)을 소개한 것은 ‘그릇을 하나도 깨지 않는’ 보수적 처방으로는 관치금융의 뿌리를 뽑을 수 없다는 점을 요 며칠 절감했기 때문이다. 금감위와 금감원은 외환위기 이후 10년간 한솥밥을 먹은 사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날선 공방을 주고받고 있다. 한마디로 밥그릇 싸움이다. 두 집안의 가장 격인 김용덕 금감위원장 겸 금감원장이 직원들을 질타하며 자제를 당부했지만 들은 척도 않는다. 정권 말기 레임덕(임기 말 권력누수)이 여의도 금융당국에 나타난 것은 금융계 떡고물의 유혹이 그만큼 달콤하다는 증거다.
권한 축소를 염려하는 금감원 측 항변에는 수긍할 대목도 있다. 그들의 주장대로 금융정책과 감독 권한이 금융위에 집중되면 시장을 좌지우지하는 ‘공룡 기구’의 폐단이 생길 수 있다. 묘한 것은 또 다른 당사자인 금융계 반응이다. 관료 집단에서는 초미의 관심사인 금융조직 개편 문제가 정작 시장에서는 화제가 되지 않는다. 금감원이 어떤 논리를 펴든, 퇴직 후 낙하산으로 챙길 자리를 하나라도 더 차지하려는 밥그릇 싸움이 본질이라는 점을 머리 좋은 민간 금융인들은 간파한 것이다.
금융회사 간부 A 씨는 “현안이 생기면 세 곳(재정경제부, 금감위, 금감원)의 상전을 일일이 찾아가 설명하고 부탁해야 했는데, 그 수가 두 곳(금융위, 금감원)으로 줄게 됐으니 그나마 다행”이라고 했다. 관치가 피할 수 없는 현실이라면 규제 창구라도 단일화되는 게 낫다는 체념이 깔려 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은 기회 있을 때마다 금융규제 혁파를 다짐하면서 민간의 자율성과 창의성을 활용해 금융을 핵심 성장동력으로 삼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아무리 제도를 그럴듯하게 고쳐도 사람이 바뀌지 않으면 어떤 처방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
관치의 피만 흐르는 관료도 아니고, 외국계의 단물만 빼먹은 금융인도 아니며, 공적자금에 기댄 금융기관 출신도 아닌 그런 시장(市場)의 일류(一流)가 필요하다. 사람이 없다지만 발상을 바꾸고 시야를 넓혀 보면 인재는 있다.
박원재 논설위원 parkwj@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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