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이 개성공단 화물열차의 운행 감축을 제의했다. 지난주 판문점 군사실무회담에서 “짐도 없이 오갈 바에야 차라리 운행 횟수를 줄이는 게 낫다”는 이유였다. 북의 속셈을 알기는 어려우나 사실관계를 보면 틀린 말이 아니다. 지난달 11일 문산∼판문역 간 열차 운행이 시작된 이래 화물을 싣고 오간 것은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다. 거의 매일 10량이나 되는 열차가 텅 빈 채로 오갔다. 정상적인 상거래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한 번 열린 철도 길을 막을 수는 없지 않으냐고 말할지 모른다. 그러나 잘못된 생각이다. 남북 합의는 상징성만으로도 소중해서 어떤 경우에도 고치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이 그동안 대북 경협을 거품투성이로 만들었다. 이제 상징성은 별 의미가 없는 시대가 됐다. 실질이 중요하다.
개성공단 화물열차는 첫 단추부터 잘못 채워졌다. 작년 10월 남북 정상회담에서 ‘문산∼봉동 간 철도화물 수송’에 합의했지만 봉동에는 역이 없어 열차는 판문역에 서고, 개성공단까지는 트럭이 동원된다. 그러니 기업들은 철도보다 육로를 택할 수밖에 없다. 임기 말 성과에 쫓긴 졸속 합의요, 맹목적인 대북 포용정책이 낳은 거품이다.
경의선과 동해선도 지난해 5월 요란하게 시험운행을 했으나 이후론 감감소식이다. 단 한 차례의 이벤트성 행사 말고는 소용없는 철도를 연결하는 데 국민의 혈세 8000억 원이 날아갔다. 안변조선협력단지 건설 합의도 마찬가지다. 남측의 어느 기업도 안변에 현장조사 한 번 가보지 않은 상태에서 남북정상 간에 합의가 이뤄졌다. 국민은 대통령과 통일부 장관의 생색내기를 위해 세금을 낸 꼴이다. 이러니 대통령직인수위원회에서 남북 합의의 내용을 검토해 이행수준에 차이를 두려는 방침이 나오는 것이다.
동서독은 우리보다 먼저 정상회담을 했지만 보여주기용(用) 합의에 매달리지 않았다. 실사구시적 접근으로 통일에 성공한 독일한테서 배워야 한다. 북한은 내일 시작되는 철도협력분과위원회에서 운행 감축을 다시 거론할 가능성이 크다. 어떤 경우에도 세금만 낭비하는 과시성 행사는 중지해야 한다. 북의 제안이 현실성 있으면 못 받을 이유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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