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리 로드맵’은 교토의정서의 1차 공약 기간 이후 포스트 교토 체제를 어떤 방식으로 구축해 나갈 것인지에 대한 밑그림과 향후 일정에 대한 틀을 담고 있다. 그간 교토의정서에서 벗어난 미국을 포함한 선진국들이 2009년 말까지 교토의정서상 의무 감축에 상응하는 방안을 도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개발도상국들도 자율 감축에 대해 협상한다는 내용에 합의한 것이다. 따라서 2013년 이후에는 어떤 방식으로든 전 세계 모든 국가가 온실가스 감축 활동에 참여할 것이다.
기후변화협약은 지구 온난화 방지라는 대의명분에서 출발했지만, 온실가스 감축량과 시기에 따라 자국 경제에 미치는 효과가 달라지기 때문에 눈에 보이지 않는 경제전쟁의 전초기지가 됐다. 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 때마다 연출되는 진통과 치열한 공방은 세계 경제를 둘러싼 주도권 다툼의 연장선상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이제 지구 온난화 문제를 계기로 한국 경제의 근본적 체질 변화를 모색할 때다. 지구 온난화 문제에 대응하고 있는 선진국으로 눈을 돌려 보자.
일본은 1997년부터 이산화탄소(CO2) 배출량 삭감을 위해 ‘환경자주 행동계획’을 수립해 온난화 방지에 힘써 오고 있다. 독일은 에너지원에 대한 세율 인상 등 환경 친화적 조세개혁을 통해 에너지 저소비형 산업구조를 이룸과 동시에 25만 개 이상의 일자리를 창출했다. 미국의 실리콘밸리는 와트컴(Wattcom) 붐이 기술혁신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바야흐로 ‘닷컴 시대’가 시들해지고 ‘와트컴’의 시대를 맞은 것이다. 전력 단위인 와트에 컴을 붙인 와트컴은 정보기술(IT) 산업의 닷컴 신화에 빗대 표현한 것으로 태양광, 풍력, 수소에너지 등 신재생에너지를 지칭한다.
이런 해외 선진국의 발 빠른 행보에서 알 수 있듯 기후변화 문제는 이제 더 머뭇거릴 여유가 없다.
우선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어떤 방식의 감축 의무가 유리할지에 대한 결과를 도출하고 이를 국제사회에서 인정받는 것이다. 동시에 국내에서는 저탄소 사회를 구현하기 위한 노력과 투자를 아끼지 말아야 한다. 한국 경제가 정보통신사회로의 전환을 이용해 선진국 진입의 기회를 잡았듯 저탄소 사회로의 이행은 명실상부한 선진국이 되기 위한 기회가 될 수 있다.
이원걸 한국전력공사 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