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장영수]청도 눈물의 씨앗, 준법 불감증

  • 입력 2008년 1월 30일 03시 08분


총선이 3개월도 채 남지 않은 현 시점에서 경북 청도의 부정선거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금권을 이용한 부정선거에서 느껴지는 씁쓸함과 더불어 일부 선거운동원의 자살에 대한 안타까움도 크지만 무엇보다 청도의 부정선거가 행해진 배경이 더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선거문화가 과거에 비해 크게 개선됐다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청도에서는 광범위한 금품살포에 의한 부정선거가 자행됐다. 더구나 과거 군수들의 부정으로 인해 재선거가 거듭된 상황에서 이런 부정선거가 행해진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선거부정 문제는 4·19혁명을 촉발시켰던 3·15부정선거 이래로 끊임없이 되풀이됐으며, 이에 대응해 선거부정방지책도 진화를 거듭해 왔다. 관권선거를 막기 위해 중앙선거관리위원회를 독립된 헌법 기관으로 설치하고, 공직선거법의 제정·개정을 통해 선거운동에 대한 폭넓은 규제를 가했을 뿐만 아니라 시민단체까지 나서 불법 선거운동의 감시 및 정책공약의 검증에 나서는 등 선거문화의 개선을 위한 노력이 다양하게 전개돼 왔다.

그런 노력의 성과는 최근 선거비용의 감소, 불법 선거운동 적발 건수의 감소 등을 통해 통계적으로 확인됐지만 그러한 변화가 종국적인 것이 아닐 수 있다는 점을 이번 청도의 부정선거가 잘 보여주고 있다. 약간의 틈새만 보이면 언제라도 금권 등에 의한 부정선거가 판을 치게 될 가능성이 상존하고 있는 것이다.

선거문화의 근본적 개선을 위해서는 법을 통해 대표되는 원칙과 기준에 대한 신뢰가 뿌리내려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공직선거법뿐만 아니라 전체 법질서에 대한 신뢰, 입법기관 및 입법절차에 대한 신뢰가 확보돼야 한다. 그렇지 않을 경우 법을 어기는 것에 대한 죄의식이 사라지고, 오히려 법을 충실히 지키는 사람이 손해 보는 것으로 인식되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회적 파장이 큰 사건의 경우 흔히 등장하는 ‘일벌백계’ 주장에도 문제가 있다. 잘못된 점에 대해서는 정확하게 가려 법적 제재가 가해져야 하지만 그 정도는 다른 경우와 형평이 맞아야 하기 때문이다. 법의 생명은 객관성과 공정성에 있다. 이번 청도 사건에서도 금품살포의 구체적 정황과 그에 따른 금품 수령자들의 책임을 정확하게 가려 법을 적용함으로써 법에 대한 신뢰를 얻도록 하여야 한다.

예컨대 금품 살포에 조직적 계획적으로 관여한 경우와 단지 제공된 금품을 거절하지 못하고 소극적 수동적으로 받은 경우를 똑같이 취급해서는 곤란하다. 또한 과태료 50배 규정을 우회하기 위해 2, 3배의 벌금형을 이용하려는 것 또한 정상적인 법적용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과태료와 달리 전과가 남게 되는 벌금형은 형벌이라는 점을 잠시 접어두더라도, 법을 편의적으로 적용하는 것은 법적용의 객관성과 엄격성에 대한 신뢰를 깨뜨리기 때문이다.

이번 청도의 부정선거는 분명 불행한 사건이다. 그것은 금품 제공자뿐만 아니라 수령자 또한 일정한 책임이 있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기 때문에 발생한 사건이며, 이번 사건이 합리적으로 해결되기 위해서는 공정선거의 중요성과 더불어 준법의 중요성도 함께 강조돼야 한다.

그러나 또한 법이 단순히 처벌만을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님을 국민이 느낄 수 있어야 한다. 즉, 전과자를 양산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국민의 실질적 이익을 위해 공정선거가 필요하고, 이를 제도적으로 관철시키기 위해서는 공직선거법에 의한 제재가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켜야 한다. 그러한 전제 위에서 청도의 부정선거에 대한 조사 및 적절한 제재가 있어야 하며, 그 결과는 청도군민뿐만 아니라 모든 국민이 납득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할 것이다.

장영수 고려대 법대 교수·헌법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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