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광장/박원암]경제는 생물, 고용부터 돌게 하라

  • 입력 2008년 1월 31일 02시 58분


‘경제를 살리겠습니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습니다.’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과 한나라당의 지난 대선 슬로건이다. 한나라당이 집권하지 않았던 지난 10년을 경제가 죽었던 ‘잃어버린 10년’이라고 하니 노무현 대통령과 여당이 가만있을 리 없다. 노 대통령은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린 게 뭐냐. 있으면 신고하라. 찾아드리겠다”고 했고, 여당은 ‘정치적 선동’이라고 일축했다. 그런데 국민은 경제를 살려서 지난 10년 동안 잃어버렸던 것들을 찾아 주겠다는 이명박 후보에게 압도적 지지를 보냈다. 결국 국민은 장사가 안 되고 일자리가 부족하니 잃어버렸던 경제를 살려 달라고 엉뚱하게 이 당선인에게 신고한 셈이다.

지난 10년 동안 뭘 잃어버렸는지 정말 몰랐단 말인가? 이쯤에서 1992년 미국 대선에서 빌 클린턴 후보가 한 말을 인용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클린턴은 자신의 재임 기간 중 냉전 종식 등 외교적 성과를 자랑하던 조지 부시 당시 대통령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건 경제야, 바보야.’

클린턴은 매년 500억 달러를 투자해 국민이 다시 일할 수 있도록 하겠다는 ‘국민제일주의’를 내걸었다. 경제를 살려서 ‘국민성공시대’를 열겠다는 이 당선인의 정책과 비슷하다. 실제 클린턴은 경기침체를 거치면서 연 2%대였던 평균성장률을 다시 연 3%대로 높였으므로 연 4%대인 한국경제의 평균성장률을 연 7%로 올리겠다는 차기 정부의 성장목표도 실현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단기성과 치중땐 물가불안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6% 수준으로 낮춰 달성하기도 쉽지 않다. 무엇보다도 단기간에 투자를 촉진해 성장률을 올리면 물가가 불안해지고 경상수지가 악화된다. 작년 12월 중 소비자물가상승률은 한국은행 물가안정목표의 상한인 3.5%를 넘어섰고, 12월 중 경상수지는 수출호조에도 불구하고 국제유가 상승으로 적자 반전이 예상된다. 게다가 올 초부터 미국의 서브프라임 모기지(비우량 주택담보대출) 부실 사태가 확산되면서 세계증시가 동반 폭락하고 미국의 경기침체가 예상되고 있어 현재 우리 경제의 상승세를 지켜 나가기도 어려워 보인다. 한편 많은 경제학자가 지난 10년 동안 연 4%대 성장은 우리 경제의 잠재성장률 수준이므로 그 이상 성장하면 물가불안 등 부작용만 커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실제 대부분의 경제연구기관은 올해 경제성장률이 잘해야 연 5% 수준일 것이라고 전망한다. 차기 정부는 올해 경제성장률을 연 6%로 잡고 있으나 올해 상반기 경제가 정말 나아지는지 지켜본 후 수정하겠다는 자세다.

사실 올해 경제성장률이 연 5% 수준이어도 특별히 문제 될 것은 없다. 세계 금융시장의 불안과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을 감안하면 현재의 경기 상승세를 이어 가는 것만으로도 만족할 만하다. 그러나 경제를 살려서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슬로건으로 집권한 차기 정부로서는 첫 단추를 잘못 끼우는 것이 된다. 올해 성장이 5%에 그치면 정부의 올해 성장목표에 미달하는 것은 물론이고, 임기 내 7% 성장목표도 물 건너가게 된다. 이렇게 되면 대외여건이 악화되는 가운데 경제를 살렸다고 자부할 수는 있지만 지난 10년을 잃어버린 세월이었다고 말하기가 민망해진다.

잃어버린 10년을 되찾겠다는 새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은 우선 조급해 하지 말라는 것이다. 경제는 순환한다. 7% 성장고지는 개마고원과 같은 고원이 아니라 산과 골을 지나서 도달하게 된다. 새 정부가 강조하는 규제개혁, 감세, 작은 정부 등 ‘경제 살리기’ 정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면서 대내외적으로 신뢰도를 높여 가면 경기가 부침하는 가운데 목표에 도달하게 된다. 규제개혁과 감세를 외치면서 1980년대 미국 경제의 성장을 이끌었던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도 임기 초에는 극심한 불황에 시달렸다.

성장보다 일자리창출 더 중요

다음으로 하고 싶은 말은 성장보다 일자리 창출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규제완화와 감세로 투자를 촉진하면 취업자 1인당 생산을 크게 늘릴 수 있지만 일자리 창출에는 불충분하다. 노동시장을 지난 10년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유연하게 해야 비로소 300만 개 일자리 창출과 7% 성장목표 달성이 가능해짐을 유념하길 바란다.

박원암 홍익대 교수·경제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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